의열단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중 순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생몰 | 1893 ~ 1931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칠원 윤씨 |
윤병구(尹炳球, 1893~1931)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칠원입니다. 청양군에 세워진 기적비문에 따르면 자는 의경(義敬)이고, 고려 문하시중 충효공 윤환의 후손으로 칠원 윤씨 37세입니다. 1893년 3월 16일 충남 청양군 청남면 중산리에서 윤임학과 계비 전주 이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품이 담대하고 모험심이 강했으며 서울 등 여러 곳을 오가며 새 문물을 익혔다고 전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박탈되자 구국의 뜻을 굳혔고, 3·1운동 이후 만주로 건너가 북경에 근거를 둔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했다고 합니다. 1922년에는 유석현·김지섭 등과 함께 총독 암살과 조선총독부·동양척식회사·조선은행 폭파를 계획했고, 군자금을 마련하려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그해 12월 서울에서 부호에게 군자금을 요구하다 25일 밤 잠복하던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1년 2월 9일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충렬대에 안장되었습니다. 1991년 청양군민의 이름으로 고향 마을 길가에 기적비가 세워졌습니다. 같은 청양 출신 칠원 윤씨 독립운동가로 윤병일이 있어, 청양이 칠원 윤씨의 중요한 세거지임을 다시 확인하게 합니다.
기적비문은 윤병구가 1922년 유석현·김지섭과 함께 총독 암살과 주요 식민 기관 폭파를 계획했고, 군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에 들어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해 12월 서울 무교동의 부호를 찾아가 군자금 5만 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고, 다시 2천 원을 요구한 뒤 25일 밤 군자금을 받으러 갔다가 잠복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청양군이 세운 기적비문에 근거한 것이므로 세부는 다른 자료와 대조가 필요합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립묘지 충렬대에 안장했습니다. 청양군은 1991년 고향 마을에 기적비를 세웠으며, 비문의 해석문은 향토사학자 윤경수가 지었으며, 참고문헌으로 『칠원윤씨 돈본』 제10호(2018)가 올라 있습니다. 족보월드에서는 독립유공자 표기(patriot)로 분류합니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국립서울현충원) 충렬대에 안장되었고, 고향 충남 청양군 청남면 중산리에 기적비가 있습니다.
칠원 윤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