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의거 좌군관, 대한광복회 충남지부 설립을 이끈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생몰 | 1873 ~ 1957 |
| 시대 | 대한제국~일제강점기 |
| 본관 | 칠원 윤씨 |
윤병일(尹炳日, 1873~1957)은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애국지사로 본관은 칠원, 자는 장일(章日), 호는 화강(華岡)입니다. 고려 문하시중 충효공 윤환의 후손으로 칠원 윤씨 37세이며, 아버지는 통정대부로 추증된 윤소권, 어머니는 김해 김씨입니다. 1873년 12월 12일 충남 청양군 목면 화양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기적비문에 따르면 1904년 정산에서 일어난 세부 토지 측량 저지 민란에 가담한 것이 첫 항일 활동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뒤 전 이조참판 민종식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 휘하에서 좌군관으로 참전했으니, 1906년 4월의 홍주 의거입니다. 이때 정산·청양·보령·홍산 등지에서 모인 수천 명이 홍주성을 점령했으나 일본군의 반격으로 패퇴했습니다. 윤병일은 청양에서 400여 명의 의병을 다시 모아 재기를 꾀했습니다.
1916년에는 논산 연산에서 동지들과 거의(擧義)를 모의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강화 석모도에서 1년간 유배 생활을 했고, 1917년 풀려났습니다. 이후 대한광복회 충남지부 설립을 이끌었다고 전합니다. 1957년 8월 23일 별세했으며, 정부는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고, 고향 목면 화양리 마을 어귀에 1991년 기적비가 세워졌습니다.
1906년 4월 홍주 의거는 민종식이 이끈 충청도 의병 활동의 큰 장면으로, 윤병일은 그 휘하에서 좌군관으로 싸웠다고 기적비문이 전합니다. 홍주성은 한때 점령되었으나 일본군의 반격으로 다시 빼앗겼고, 윤병일은 청양에서 의병 400여 명을 다시 수습했다고 합니다. 같은 사건의 지휘관이던 민종식은 여흥 민씨입니다.
1916년 연산 거의 모의가 탄로 나 강화 석모도에서 1년간 유배 생활을 했고, 이후 대한광복회 충남지부 설립을 주도했다고 전합니다.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같은 청양 출신 윤병구(독립장)와 함께 칠원 윤씨가 충남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고 전하며, 기적비는 충남 청양군 목면 화양리 마을 어귀에 있습니다.
칠원 윤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