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연산군 때 문신, 홍문관 직제학·대사간, 청백리, 호 지퇴당
| 생몰 | 1505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칠원 윤씨 |
윤석보(尹碩輔, ?~1505)는 조선 성종·연산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칠원, 호는 지퇴당(知退堂)입니다. 1472년(성종 3) 문과에 급제해 풍기군수를 거쳐 홍문관 직제학, 대사간 등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칠원 윤씨 인물 가운데 청백리에 이름이 오른 대표적인 선비입니다.
연산군 때 갑자사화(1504)가 일어나자 유배되었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는 졸년을 1505년으로 적고 있습니다. 생전의 청렴함이 인정되어 뒤에 청백리에 녹선되었다고 하며, 녹선 시기는 자료에 따라 선조 때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사후 추증에 대해서도 자료가 갈립니다. 칠원 윤씨를 소개하는 향토문화대전 쪽에서는 도승지에 추증되었다고 하고, 증손 윤탁연의 위키백과 항목에서는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고 적고 있으므로 두 설을 함께 적어 둡니다.
아들은 강원도 관찰사와 부제학을 지낸 윤풍형(호 송월당)이며, 증손이 임진왜란 때 함경도에서 순직한 윤탁연입니다. 이렇게 3~4대에 걸쳐 청백리와 고위 문관이 이어졌다는 점이 칠원 윤씨가 조선 전기 사림 문관 가문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줍니다. 후손과 지역 유림은 함안 칠서면의 홍포서원에 양성당 윤지, 정평공 윤자당, 헌민공 윤탁연과 함께 그를 모셨습니다.
윤석보의 생몰년과 추증 관직은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졸년은 위키백과가 1505년이라 적고, 추증은 도승지(함안 지역 문화대전)와 이조참판(윤탁연 항목) 두 가지로 전합니다. 청백리 녹선 시기도 선조 때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기록이 시대와 문헌에 따라 이렇게 갈리는 것은 조선 전기 인물에서 흔한 일이므로, 족보월드는 확인되는 사실과 갈리는 설명을 구분해 적습니다.
칠원 윤씨 시조묘가 있는 함안 칠서면 계내리에는 1782년(정조 6)에 세운 홍포서원이 있어, 충효공 윤환·정평공 윤자당·양성당 윤지·지퇴당 윤석보·헌민공 윤탁연을 모셨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80년 지금 자리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아들 윤풍형과 증손 윤탁연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청백리 가풍이 관직으로 이어진 사례로 소개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윤풍형(강원도 관찰사·부제학), 증손 윤탁연(형조·호조판서, 광국공신).
칠원 윤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