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의 문인으로 기묘사화에 삭직된 문신, 자는 형중, 호는 귤정
| 생몰 | 1495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해남 윤씨 |
윤구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남이며 자는 형중(亨仲), 호는 귤정(橘亭)입니다. 1495년(연산군 1)에 태어났고 몰년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미상으로 적혀 있습니다. 한 학술 논문은 그의 생몰을 1495~1549년으로 소개합니다. 할아버지는 윤경, 아버지는 생원 윤효정입니다.
1513년(중종 8)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1516년 식년 문과에 급제해 사가독서를 했습니다. 이듬해 주서를 거쳐 홍문관 수찬, 지제교, 경연검토관, 춘추관 기사관 등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1519년 기묘사화 때 관직에서 삭직되었고, 승정원 주서 시절 왕에게 사실과 다른 말을 한 일이 드러나 영암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고 합니다. 1538년에 복직되었습니다.
문집으로 『귤정유고』가 있습니다. 서지학 연구에 따르면 이 문집에는 33편의 글이 실려 있고 필사본 3종과 목활자본이 알려져 있으며, 시와 부에는 자연과 사물을 인생에 빗대어 수신·덕·절개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고 합니다. 연구자는 이것을 해남 윤씨 집안의 가학인 소학의 정신과 통한다고 보았습니다. 남해향사에 봉안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들이 형조판서를 지낸 윤의중이고, 윤구는 윤선도의 증조부가 됩니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삭직되었으며, 위의 사실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근거합니다. 영암 유배의 정확한 연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귤정유고』는 서지학 연구 대상이 되었고, 국역본 『귤정선생 유고』가 최근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윤효정의 집안 이야기도 함께 보세요.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윤의중이 형조판서에 올랐고, 그의 손자가 윤선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