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국보 제240호)을 남긴 조선 후기 화가, 자는 효언, 호는 공재

| 생몰 | 1668 ~ 1715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해남 윤씨 |
윤두서(1668~1715)는 조선 후기의 선비 화가로 본관은 해남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으로, 윤이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종손 윤이석의 아들로 입적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청송 심씨 심광사의 딸이고 부인은 전주 이씨(이수광의 증손녀)입니다. 아들로 윤덕희와 윤덕렬을 두었습니다. 윤덕렬의 딸 윤소온이 정재원과 혼인해 낳은 자손에 정약전·정약종·정약용이 있어, 정약용 형제의 외가 쪽 증조부가 됩니다.
유학은 물론 천문지리, 수학, 병법 등 여러 분야에 능통했고 이런 실학적 태도가 가풍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26세에 진사에 급제했으나 당쟁이 심하던 때여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시서화에 전념했습니다. 글씨와 그림에 능했고 특히 인물과 동식물 그림에 뛰어났습니다. 풍수에 대한 관심으로 『동국여지지도』, 『일본여도』 같은 회화식 지도를 만들었고, 『고씨화보』와 『당시화보』 등을 통해 남종화 및 작화 방법론의 유행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대표작으로 〈자화상〉(국보 제240호)과 〈노승도〉, 〈산수도〉, 〈유하백마도〉, 〈나물 캐는 여인〉, 〈짚신 삼는 노인〉이 알려져 있고, 〈심득경 초상〉은 보물 제1488호입니다. 심사정·정선과 함께 3재(三齋)로 불립니다. 자화상은 해남 녹우당에 전해 오고 있으며, 녹우당에는 윤두서와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 3대의 그림을 담은 해남윤씨 가전 고화첩이 전한다고 합니다. 전라도 해남 연동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화상〉은 1987년 국보로 지정되어 녹우당에서 전해집니다. 얼굴 중심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사실주의 회화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소개됩니다.
아들 윤덕희와 손자 윤용까지 화풍이 이어졌고, 2014년 국립광주박물관은 서거 300주기를 기념해 윤두서 일가 3대의 서화를 조명하는 특별전을 열었다고 합니다. 본관 문서 해남 윤씨에서 가문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전라도 해남 연동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남 윤덕희(화가), 차남 윤덕렬이 있고, 외증손 계통에 정약전·정약종·정약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