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조판서와 대사헌을 지낸 문신, 윤선도의 조부, 자는 치원, 호는 낙천
| 생몰 | 1524 ~ 1590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해남 윤씨 |
윤의중(1524~1590)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남이며 자는 치원(致遠), 호는 낙천(駱川) 또는 태천(駘川)입니다. 증조부는 윤경, 할아버지는 윤효정, 아버지는 정랑 윤구이며 어머니는 임휴의 딸입니다. 병조참판,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지냈고, 고산 윤선도의 할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1543년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고 154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습니다. 승정원 주서와 저작을 거쳐 부수찬, 검토관, 부교리 등을 지냈고, 1555년에는 제주선로사로 다녀왔으며 이조정랑에 올랐습니다. 1560년대에는 동부승지,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 도승지, 대사간을 역임했고, 1566년 호조참판이 되었습니다. 경상도관찰사와 이조참판을 거치며 『명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습니다.
1570년대에는 평안도관찰사, 병조참판, 대사헌, 예조참판, 부제학 등을 지냈고 1581년 형조판서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1589년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관직에서 삭출되었는데, 위키백과는 이발의 외숙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1610년(광해군 2)에 아들 윤유기의 청으로 신원되어 복관되었습니다. 장남 윤유심은 윤선도의 생부, 차남 윤유기는 강원도관찰사를 지냈고 윤선도의 양부가 됩니다.
1548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승지, 대사성, 부제학, 도승지, 관찰사 등 요직을 두루 지냈습니다. 상세한 임명 시기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윤의중 항목을 따릅니다.
1589년 정여립 옥사(기축옥사) 때 관직에서 삭출되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 문서는 정여립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이발의 외숙이라는 이유로 연루되었다고만 적습니다. 1610년 복관되었습니다. 손자 윤선도 문서도 함께 보세요.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남 윤유심, 차남 윤유기를 두었으며, 손자가 윤선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