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암일기』를 남긴 윤선도의 손자, 호는 지암
| 생몰 | 1636 ~ 1699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해남 윤씨 |
윤이후(1636~1699)는 조선 후기 해남 윤씨의 인물로 호는 지암(支菴)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손자이며 공재 윤두서의 생부입니다. 윤두서는 윤이후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윤선도의 종손인 윤이석에게 입양되었다고 전하며, 한편 위키백과에서는 윤이석의 아들로 입적된 것으로 서술합니다. 한 신문 소개는 그가 당대 남인의 거두였던 윤선도의 정치적 유산과 해남 윤씨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았다고 평합니다.
그가 남긴 『지암일기』는 1692년 1월 1일부터 1699년 9월 9일까지 7년 9개월 동안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로, 원본은 필사본이어서 오랫동안 문중에만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탈초와 표점을 거쳐 책으로 나왔고, 성균관대 하영휘 교수가 2013년 11월부터 번역에 착수해 6년여 만에 한글 완역본이 나왔습니다. 일기는 17세기 말 남도 양반가의 경제 활동과 교유, 지역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로 활용됩니다.
한 학술 논문 초록에 따르면 윤이후는 1692년 함평 현감 자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말년까지 약 8년을 향촌에서 살면서 111회, 755일에 달하는 여행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말년에는 해남 죽도에 은거하며 가사 작품 「일민가」를 남겼다고 합니다. 위의 내용은 모두 신문 기사와 논문 초록에 근거한 것이어서, 구체적 관직 이력과 고향 표기(논문은 영암으로 적음) 등은 더 확인이 필요합니다.
1692년 1월 1일부터 1699년 9월 9일까지의 일기로, 번역본이 나와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번역본을 참고하세요.
아들 윤두서는 조선 후기 화단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해남 윤씨 문서에서 가문 전체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넷째 아들이 화가 윤두서(윤이석에게 입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