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씨(昌寧 曺氏) —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경상남도 창녕을 본관으로 하는 조씨(曺)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신라 진평왕의 사위로 알려진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고려 태조의 딸 덕공공주와 혼인한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삼습니다. 조씨(曺)의 다른 본관 10여 개가 모두 창녕 조씨에서 갈라졌다는 것이 통설이어서 사실상 단본으로 봅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 인구는 366,798명입니다.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경상남도 창녕을 본관으로 하는 조씨(曺)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신라 진평왕의 사위로 알려진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고려 태조의 딸 덕공공주와 혼인한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삼습니다. 조씨(曺)의 다른 본관 10여 개가 모두 창녕 조씨에서 갈라졌다는 것이 통설이어서 사실상 단본으로 봅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 인구는 366,798명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창녕 조씨 인구는 약 366,798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조씨라도 본관(창녕)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창녕을 본관으로 하는 조씨(曺)의 대표 계열로 전해집니다. 시조 조계룡(曺繼龍)은 신라 진평왕의 사위로 알려져 있으며, 창성부원군에 봉해지고 태자태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자(字)는 인경(鱗卿)이라고 합니다.
득성(得姓)에 관해서는 설화가 전합니다.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화왕산 용지(龍池)에서 기도한 뒤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 겨드랑이에 '曺' 자가 있어 왕이 성과 이름을 내렸다는 내용입니다. 이 설화는 『여지도서』(1760년대), 『경상도 읍지』(1832), 『영남읍지』(1895)에 실려 있습니다.
조계룡 이후의 세계(世系)가 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라 말 아간시중을 지내고 고려 태조의 딸 덕공공주와 혼인한 조겸(曺謙)을 중시조(1세)로 삼습니다. 고려 때에는 조겸의 손자 조연우부터 8대에 걸쳐 문하평장사를 냈다고 합니다. 대동항렬은 조겸의 13세손인 삼송(三松) 형제 조송무·조송군·조송학을 1세로 삼아 셉니다.
조씨(曺)에는 능성·남평 등 다른 본관이 10여 개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창녕 조씨에서 갈라졌다는 것이 통설이어서, 조씨(曺)는 사실상 창녕 단본으로 봅니다.
위키백과 「창녕 조씨」 문서에는 48개 안팎의 파가 실려 있습니다. 파조가 확인된 파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밖에 사의공파, 대사헌공파, 문장공파, 문정공파, 충정공파, 충간공파, 태복경공파 등도 실려 있습니다. 문장(조위), 충간(조석문), 문정(조식), 충정(조상치·조계상)처럼 파 이름이 인물의 시호와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각 파의 파조가 그 인물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감사공파·상호군공파·좌시중공파·생원공파의 파조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소개한 태호공파는 위키백과 파 목록에서 확인되지 않아 목록에서 뺐습니다.
이 밖에 김천·산청·담양·보성 등에도 세거지가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 창녕 조씨는 366,798명이었습니다. 2000년에는 105,282가구 338,222명으로 성씨별 28위였고, 1985년에는 72,213가구 299,669명이었습니다. 경남과 부산에 가장 많이 삽니다.
종친회로는 창녕조씨 대종회가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chocy.co.kr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접속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Daum 카페(cafe.daum.net/chocy)도 운영합니다. 창녕조씨 중앙화수회에는 2023년 조규완 회장이 취임했다는 게시물이 있으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나무위키에는 2017년 대종회가 확정한 표준 항렬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1880년 갑술대동보 때 항렬자를 통일했다고 전하지만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부제학공파, 감사공파, 상호군공파, 좌시중공파, 양평공파, 생원공파, 태호공파, 승지공파, 창산군파, 태복경공파, 부사직공파
부제학공파는 조선 단종 때 집현전 부제학을 지낸 정재(靜齋) 조상치(曺尙治)를 파조로 합니다. 조상치는 고려 말 좌정승 조익청의 손자로, 길재(吉再)의 문인이며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습니다.
세조가 즉위한 뒤 예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은거하여 절의로 이름이 났고, 1791년(정조 15) 단종의 장릉에 배향되었습니다. 시호는 충정(忠貞)입니다. 증손 조계상(曺繼商)은 중종반정 정국공신으로 우찬성에 올랐으며, 그 후손은 충정공파로 갈라졌습니다.
감사공파는 관찰사(감사)를 지낸 조항(曺沆)을 파조로 합니다. 조항은 조경수(曺敬修)의 아들이며, 조경수는 고려 말 문하시중 조민수의 아우입니다.
조항의 아들 조석문(曺錫文, 1413~1477)은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되고 영의정에 올라 창녕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입니다. 경기도 의왕 등지에 이 파의 세거지가 있습니다.
상호군공파는 고려 말 상호군(上護軍)을 지낸 소옹(巢翁) 조승달(曺承達)을 파조로 합니다. 조승달은 공민왕 때 좌정승을 지낸 양평공 조익청의 손자입니다.
그는 이성계의 즉위에 반대하여 경기도 양평 용문산 아래 조현리(曺峴里)에 은거하였다고 전하며, 아들 조억기(曺億基)도 아버지를 따라 은거하고 조선 조정이 내린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좌시중공파는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조민수(曺敏修, ?~1390)를 파조로 합니다. 조민수는 홍건적 격퇴와 왜구 방어에 공을 세웠고, 1383년(우왕 9) 문하시중에 올라 창성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1388년 요동정벌 때 좌군도통사로 출정하여 우군도통사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하였으나, 이후 전제개혁에 반대하다 조준 등의 탄핵을 받아 창녕으로 유배되었고 1390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평공파는 고려 후기 무신 조익청(曺益淸)을 파조로 하며, 파명은 그의 시호 양평(襄平)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익청은 충숙왕·충혜왕 대에 중랑장·대호군 등을 지냈고, 공민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호종한 공으로 1352년 연저수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이어 좌정승에 올라 하성부원군(夏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376년(우왕 2) 공민왕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부제학 조상치와 상호군 조승달이 그의 손자입니다.
생원공파는 생원(生員) 조안습(曺安習)을 파조로 하는 계파로 전해집니다. 조안습은 조선 중기의 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증조부로, 그의 대에 경상도 삼가현 판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식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그 문하에서 김효원·정인홍·정탁·최영경·곽재우 등이 배출되었습니다. 시호는 문정(文貞)입니다.
태호공파(太湖公派)는 부제학 조상치(曺尙治)의 7세손으로 호가 태호(太湖)인 조행립(曺行立)을 중심으로 하는 계통으로, 그의 후손을 태호공파라 부른다고 전해집니다. ‘태오공파’로 부르거나 적는 경우도 있어 검색에서는 두 이름 모두로 찾을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입향 배경 — 조행립의 아버지 조기서는 임진왜란 직전 벼슬을 버리고 전라도 영암으로 내려왔다고 하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행립이 어머니와 가족을 모시고 외가가 있는 영암 구림마을로 피난해 정착하면서 태호공파 종가의 시대가 열렸다고 전해집니다.
구림 대동계와 가훈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황폐해진 향촌을 다시 세우기 위해 영암 구림 대동계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지방 자치의 선구적인 모델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종가의 가훈은 ‘아인(我忍, 내가 참는다)’으로, 내가 참음으로써 이웃과 함께 살며 공동체의 평화를 지킨다는 상생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 유적 — 전남 영암군 서호면에 있는 서호사(西湖祠)는 태호공파 선조들을 모시고 학문을 닦던 중심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 위 내용은 문중에서 전해지는 설명을 정리한 것으로, 세대와 사적은 문헌과 종중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유하신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승지공파(承旨公派)는 조상명을 파조로 하는 창녕 조씨의 분파입니다.
디지털성주문화대전에 따르면, 경상북도 성주에 처음 들어온 창녕 조씨 입향조 조석차가 이 파에 속합니다.
창산군파는 조계은(曺繼殷)을 파조로 하는 창녕 조씨의 분파로 전합니다.
파 이름의 한자 표기와 파조의 구체적인 행적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태복경공파는 위키백과 「창녕 조씨」 문서의 파 목록에 실린 분파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파의 세거지로 경상북도 고령 다산면 송곡리와 경상남도 합천 묘산면이 있습니다. 파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부사직공파는 나무위키에 '주'를 파조로 하는 창녕 조씨의 분파로 실려 있습니다. 파조 이름의 한자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파의 세거지로 경상남도 합천 쌍책면 덕봉리가 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조계룡(창녕 조씨 시조, 창성부원군), 조민수(고려 말 문하시중, 위화도 회군 때 좌군도통사), 조익청(고려 말 좌정승, 하성부원군, 양평공파 파조), 조상치(단종 때 집현전 부제학, 부제학공파 파조), 조석문(세조 때 영의정, 창녕부원군), 조위(『매계집』·「만분가」, 도승지), 조계상(중종반정 정국공신, 조상치의 증손), 조식(호 남명, 1501~1572), 조호익(퇴계 문인, 임진왜란·정유재란 의병), 조만식(1883~1950, 독립운동인명사전 수록), 조봉암(1898 또는 1899~1959, 초대 농림부 장관), 조훈현(1953년생, 바둑 9단), 조국(정치인, 1965년생), 조희대(제17대 대법원장)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창녕 조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인물들은 위키백과 「창녕 조씨」 문서의 인물 목록에 실려 있습니다. 다만 각 인물 문서에서 본관을 따로 교차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밖에 조윤형, 조해녕, 조희연, 조일환도 같은 목록에 있습니다.
창녕 조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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