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씨 시조, 창성부원군
| 생몰 | 571년(일설 626년) ~ 651년(일설) |
| 시대 | 신라 |
| 본관 | 창녕 조씨 |
조계룡(曺繼龍)은 창녕 조씨의 시조입니다. 신라 진평왕의 사위로 알려져 있으며, 창성부원군에 봉해지고 태자태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자(字)는 인경(鱗卿)이라고 합니다.
그의 출생에는 득성(得姓) 설화가 전합니다.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창녕 화왕산 용지(龍池)에서 기도한 뒤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 겨드랑이에 '曺' 자가 있어 왕이 성과 이름을 내렸다는 내용입니다. 이 설화는 『여지도서』(1760년대), 『경상도 읍지』(1832), 『영남읍지』(1895)에 실려 있습니다.
생몰 연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설화에서는 626년에 태어났다고 하고, 다른 자료는 571~651년으로 적습니다. 선덕여왕과 혼인했다는 설도 있으나, 사서 기록과 맞지 않습니다. 조계룡 이후의 세계(世系)는 전하지 않아, 창녕 조씨는 고려 태조의 딸 덕공공주와 혼인한 조겸(曺謙)을 중시조(1세)로 삼습니다.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화왕산 용지에서 기도한 뒤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 겨드랑이에 '曺'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이 성과 이름을 내렸다고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여지도서』, 『경상도 읍지』(1832), 『영남읍지』(1895)에 실려 있습니다.
창녕읍 옥천리 산322의 '창녕조씨 득성 설화지'는 2003년 4월 17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관리단체는 창녕조씨화왕산득성지보존회입니다. 이곳의 득성비는 1897년 경상도 관찰사 조시영(曺始永)이 세웠으며, 비면에 '昌寧曺氏得姓之地'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면적은 국가유산청 자료에 10,053㎡, 위키백과에 4,500㎡로 서로 다르게 나옵니다.
창녕 조씨는 조계룡 이후의 세계가 전하지 않아 고려 태조의 사위인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삼습니다. 위키백과는 창녕 조씨에서 갈라진 파를 48개 안팎으로 소개하며, 조씨(曺) 가운데 다른 본관 대부분이 창녕에서 갈라졌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시조 조계룡은 그러므로 창녕 조씨뿐 아니라 曺 성 전체의 상징적 기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대표 후손으로는 고려 말 좌정승 조익청, 단종 때 부제학 조상치, 조선 중기 학자 조식, 근현대의 조만식·조봉암 등이 있습니다. 후손들의 이야기는 창녕 조씨 페이지에서 계통별로 볼 수 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득성 설화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창녕읍 옥천리 산322의 '창녕조씨 득성 설화지'(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가 있습니다.
창녕 조씨 전체가 그를 시조로 받듭니다. 중시조는 조겸이며, 양평공파·부제학공파 등 48개 안팎의 파로 나뉩니다.
신라 진평왕의 사위로 알려진 조계룡(曺繼龍)입니다. 조계룡 이후의 세계가 전하지 않아, 고려 태조의 사위인 조겸을 중시조로 삼습니다.
자료마다 다릅니다. 설화에서는 626년에 태어났다고 하고, 다른 자료는 571~651년으로 적습니다.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산322에 있습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