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 김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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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김씨(金寧 金氏) —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전해지는 김시흥을 시조로 하며, 본관 김녕은 옛 김해 일대의 지명으로 설명됩니다. 김향·김순 두 중시조 아래 34개 파로 나뉘고, 충의공파가 가장 큰 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 약 290,092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김녕 김씨란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전해지는 김시흥을 시조로 하며, 본관 김녕은 옛 김해 일대의 지명으로 설명됩니다. 김향·김순 두 중시조 아래 34개 파로 나뉘고, 충의공파가 가장 큰 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김녕 김씨 인구는 약 290,09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김녕)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김녕 김씨(김영 김씨)

김녕 김씨(金寧 金氏)는 옛 문헌이나 족보에서 '김녕'을 '김영'으로 적거나 읽는 경우가 많아 김영 김씨라고도 부릅니다. 고려 말 본관 지명이 김해(金海)로 바뀌면서 한때 '후 김해 김씨(後金海金氏)'로 불리기도 했으나, 수로왕 계통의 김해 김씨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조선 고종 때(1865년으로 전함) 본관을 김녕(金寧)으로 정했다고 전합니다.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전하는 김시흥(金時興)입니다.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고, 후손들이 김녕을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대표적인 갈래로 시랑공파·충의공파·영돈녕공파·목사공파·충정공파 등이 있습니다.

주요 파(派)

시랑공파(봉상대부예부시랑공파), 충의공파, 영돈녕공파, 목사공파, 충정공파, 영광군수공파, 병조참의공파, 동지사공파, 충경공파, 충숙공파, 송암공파, 분성군파, 상서공파, 직제학공파, 도순찰사공파

시랑공파(봉상대부예부시랑공파) (侍郞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의 정식 이름은 봉상대부예부시랑공파(奉常大夫禮部侍郎公派)이며, 김녕김씨 대종회 등에서는 줄여서 시랑공파라고 부릅니다. 옛 표기로 '김영 시량공'이라고도 씁니다. 파조는 김녕 김씨 5세손으로 정리되는 김문백(金文伯)입니다. (휘(諱)는 돌아가신 조상의 생전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로, '휘 문백'은 김문백 공을 가리킵니다.)

파 이름은 파조가 고려에서 지낸 품계와 관직에서 왔습니다.

5세손 항렬에서 상서공파(휘 문희)·직제학공파(휘 문엽) 등과 함께 주요 파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정리됩니다.

한편 고려 때 형부시랑(刑部侍郞)을 지낸 김중원(金重源)도 '시랑공'으로 불리며, 자료에 따라 시조 김시흥의 증손 또는 김극세의 아들로 적힙니다. 김중원을 시랑공파 파조로 소개하는 글도 있으나, 김녕김씨 중앙종친회 분파표 등은 시랑공파 파조를 김문백으로 적습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충의공파 (忠毅公派)

충의공파는 조선 초기의 문신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1399~1456)를 파조로 합니다. 김문기는 공조판서에 이르렀으나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순절했고, 사육신에 준하는 인물로 기려집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며 1731년 복관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들 김현석과 손자 김충주, 15대손으로 전하는 의병장 김도현 등이 이어집니다. 제14대 대통령 김영삼도 이 파의 후손으로 전해지며, 김녕 김씨 전체의 대다수(약 80%라는 설명이 있음)를 차지하는 가장 큰 파로 정리됩니다. 별도로 충의공파 대종회가 있습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영돈녕공파 (領敦寧公派)

영돈녕공파는 김준(金遵, 호 만지당)을 파조로 합니다. 시조 김시흥의 10세손으로, 세종 때 병조판서를 거쳐 영돈녕부사(돈녕부영사)에 이르렀다고 전합니다. 세조가 좌의정을 권했으나 사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벼슬을 버리고 전남 고흥(흥양) 과역면 가산리 일대에 자리 잡았다고 전하며, 장인 안숭선을 따라 정착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곳에 만지당 연못이 있다고 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목사공파 (牧使公派)

목사공파는 진주목사를 지낸 김형(金硎)을 파조로 하며, 항렬표 등에서는 '진주목사공 형파(晋州牧使公 硎派)'로도 표기됩니다.

김녕 김씨 분파도에서는 영돈녕공 김준과 같은 대에 놓인 형제 계열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충정공파 (忠貞公派)

충정공파는 김준영(金俊榮, 호 동악)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 어가를 호종한 공으로 호종공신이 되고 분성군에 봉해졌다고 전하며, 시호는 충정(忠貞)이고 충신 정려를 받았다고 합니다.

김녕 김씨에서 분적한 분성 김씨(盆城金氏)를 이 파와 연결해 정리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한편 분성군파는 김응수를 파조로 하는 별도의 파로도 정리되어 있어, 두 파의 관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영광군수공파 (靈光郡守公派)

영광군수공파은(는) 김대영(金大榮)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김향의 후손 계열로 정리됩니다. 세대와 활동은 문중 자료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병조참의공파 (兵曹參議公派)

병조참의공파은(는) 김후영(金後榮)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김향의 후손 계열로 정리됩니다. 세대와 활동은 문중 자료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동지사공파 (同知事公派)

동지사공파은(는) 김희영(金希榮)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김향의 후손 계열로 정리됩니다. 세대와 활동은 문중 자료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충경공파 (忠敬公派)

충경공파은(는) 김경세(金景世, 호 계은)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병자호란(1636) 때 공주에서 청군과 싸우다 광주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전하며, 시호는 충경(忠敬)이고 충신 정려를 받았다고 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충숙공파 (忠肅公派)

충숙공파은(는) 김흔(金欣, 호 금은)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무과에 합격한 뒤 병자호란에서 전사했다고 전하며, 병조판서에 증직되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라 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송암공파 (松菴公派)

송암공파은(는) 김질(金秩, 호 송암)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고려가 망한 뒤 도고산에 은거하며 태조의 예조판서 부름을 사양했다고 전합니다. 아들 김익생은 1405년 효자 정려를 받았다고 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분성군파 (盆城君派)

분성군파은(는) 김응수(金應壽, 자 남로)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해 1604년 호성공신 3등에 책봉되고 분성군에 봉해졌으며, 1605년 영의정에 복증되었다고 전합니다. 별도의 대종회가 있습니다. 충정공파와의 관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상서공파 (尙書公派)

상서공파은(는) 김문희(金文熙)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김순의 후손 계열로, 시랑공파·직제학공파와 함께 5세손 항렬에서 갈라진 것으로 정리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직제학공파 (直提學公派)

직제학공파은(는) 김문엽(金文燁)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김순의 후손 계열로, 시랑공파·상서공파와 함께 5세손 항렬에서 갈라진 것으로 정리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도순찰사공파 (都巡察使公派)

도순찰사공파은(는) 김문제(金文齊)을 파조로 하는 김녕 김씨의 분파입니다. 김순의 후손 계열로 정리됩니다. 세대와 활동은 문중 자료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김영삼(제14대 대통령), 김문기(조선 사육신), 김도현(한말 의병장), 김법린(제3대 교육부장관), 김재규(중앙정보부장), 김석수(제34대 국무총리)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시조 김시흥

시조는 김시흥(金時興)으로,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전해집니다. 세대 수는 자료마다 달라 경순왕의 8세손 또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9세손으로 적히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알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해 병부시랑 등을 거쳤고, 묘청·조광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공신에 올라 평장사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호는 문열(文烈)로 전하며, 봉작은 김녕군(金寧君)으로 적는 자료와 다른 군호로 적는 자료가 있어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시흥의 아래로 김향(金珦)과 김순(金珣) 두 갈래가 중시조로 받들어지며, 이후 여러 파로 나뉩니다.

본관 유래와 복관

김녕(金寧)은 오늘날 경상남도 김해 일대의 옛 지명으로 설명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지명이 금관에서 김해로, 고려 시기에 잠시 김녕으로, 다시 김해로 바뀌는 과정에서 같은 곳을 본관으로 쓰는 김해 김씨와 구별하기 위해 '후 김해 김씨(후김)'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본관을 김녕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1849년(헌종 15) 김치규 등의 탄원, 1865년 또는 1885년의 예조 승인 등 시기는 자료마다 다르게 전해집니다. 지금도 김해 김씨를 그대로 쓰는 집안이 있다고 합니다.

옛 문헌에서 '寧'을 '영'으로 읽어 김영 김씨라고도 부르며, 같은 뿌리의 금녕 김씨도 있습니다.

인구와 세거지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김녕 김씨는 290,092명으로, 금녕 김씨(287,701명)와 합치면 577,793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둘을 합쳐 집계하는 자료도 있으니 기준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집성촌으로는 대구 북구 노곡동·군위군, 경북 경주·김천·상주, 경남 진주·의령·합천, 전북 고창·순창, 전남 고흥·함평·무안, 충북 괴산 연풍, 충남 논산 은진, 강원 평창 진부 등이 꼽히며, 황해도 신계 일대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의 전개

김향은 시흥의 아들로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고 시호는 원정(元靖)이라 전해집니다. 이후 김극세·김중원·김문제 등이 관직을 지냈다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고려 말의 김질(金秩, 호 송암)은 고려가 망하자 도고산에 은거하며 조선 태조의 예조판서 부름을 사양했다고 전합니다. 다만 이 시기 기록은 족보 계통 자료에 바탕을 둔 것이 많아 정사와 교차 검증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조선 시대의 전개

조선 초 김익생이 1405년 효자로 정려를 받았고, 그의 후손 김문기(1399~1456)는 공조판서에 올랐다가 단종 복위를 도모한 일로 순절했습니다. 아들 김현석도 함께 순절했다고 하며, 김문기는 1731년 복관되고 충의 시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자 김충주는 숨어 숯을 구워 살았다고 전하고, 효자 정려가 내려졌습니다.

영돈녕공 김준은 세종 때 병조판서 등을 지냈고 세조의 높은 벼슬 권유를 사양한 채 고흥에 정착했다고 전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김준영과 김응수가 선조의 어가를 호종했고, 병자호란에는 김경세와 김흔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한말에는 의병장 김도현(1852~1914)이 영해 앞바다에서 순절했습니다.

파의 개요

나무위키 정리에 따르면 김향의 후손 25개 파와 김순의 후손 9개 파, 모두 34개 파가 있다고 하며, 충의공파가 전체의 대다수(약 80%라는 설명)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김향 계열: 영돈녕공파(김준), 충의공파(김문기), 목사공파(김형), 충정공파(김준영), 영광군수공파(김대영), 병조참의공파(김후영), 동지사공파(김희영), 충경공파(김경세), 충숙공파(김흔), 송암공파(김질), 대사성공파(김지), 분성군파(김응수) 등 25개 파.

김순 계열: 도순찰사공파(김문제), 상서공파(김문희), 시랑공파(김문백), 직제학공파(김문엽) 등 9개 파. 분적한 성씨로 분성 김씨와 양근 김씨가 언급됩니다.

대표 인물

역사 인물로 김문기, 의병장 김도현, 교육부장관을 지낸 김법린이 있고, 현대에는 김영삼(제14대 대통령), 김재규(제8대 중앙정보부장), 김석수(제34대 국무총리) 등이 이 본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영삼은 충의공파 후손으로 전합니다.

유적과 정려

김익생·김충주의 효자 정려, 김준영·김경세의 충신 정려, 김충주 가문의 오정각(5대 정려), 김준이 정착한 고흥 과역면 가산리의 만지당 연못 등이 자료에 나옵니다. 김문기는 서울 노량진 사육신공원에 가묘가 있고 여러 사우에 모셔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묘소·재실·서원 위치는 문중 자료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종친회와 족보

김녕김씨 중앙종친회와 충의공파·분성군파 대종회가 각각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전자 대동보와 항렬표를 공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항렬과 세계는 파·문중마다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와 종친회 안내로 확인하세요.

참고 영상

한국의 성씨 43회 김녕 김씨 | STB상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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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김녕)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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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녕 김씨 시조 계보도

김녕 김씨 시조 계보도김시흥~백촌 김문기·김현석
공개된 사료로 확인되는 김녕 김씨 윗대 계보를 실제 족보트리로 그렸습니다. 인물을 누르면 그 분부터 위쪽 계보를 내 족보 맨 위로 가져올 수 있어요(요금제 인물 수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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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김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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