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유일한 여성 의원(1939~1945) · 건국훈장 독립장
| 생몰 | 1904 ~ 1979 |
| 시대 | 일제강점기·광복 이후 |
| 본관 | 온양 방씨 |
방순희(方順熙, 1904~1979)는 1939년부터 광복 때까지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 유일한 여성 의원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입니다. 본관은 온양이며, 어릴 때 이름은 방순이(方順伊)입니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위키백과는 아버지를 방도경(方道京), 어머니를 김복녀로 적고 있습니다.
1911년 가족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그곳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뒤 한인 교회가 운영하던 기독교계 삼일여학교를 다녔습니다. 1918년 서울로 와서 정신여학교에 입학해 1923년 졸업했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가 신한촌의 백산소학교에서 동포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25년 다시 경성에 와서 잠시 러시아영사관에서 통역으로 일하며 북풍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1920년대 후반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1939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함경남도 의원에 선출되어 광복 때까지 의정 활동을 했습니다. 같은 해 임시정부의 결의에 따라 연합국에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하는 대표로 뽑혀, 충칭의 소련대사관을 상대로 외교 활동을 벌였습니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을 창립해 집행위원장 겸 서무부 주임을 맡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서 1941년 제1차 전당대표대회에 토교 대표로 참석했으며, 1942년 한국독립당 충칭구 당부 간사가 되었습니다. 1943년에는 한국애국부인회를 재건해 부주석으로 활동했고, 임시정부 선전부 선전과원으로 대적선전위원회를 통해 일본군 안의 한국인 병사들에게 우리말 방송을 했습니다.
광복 뒤에는 임시정부 국내선전연락원으로 중국 각지에서 동포를 안정시키는 선무 활동을 펼쳤고, 1946년 4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원들과 함께 귀국했습니다. 이후 한국독립당 부인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정부는 1963년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습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임시의정원에서 대일·대독 선전포고, 광복군 창설, 건국강령 채택 같은 주요 안건 논의에 참여했다고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