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 방씨 중시조(1세) · 온수군(溫水君)으로 전함
| 시대 | 고려 초(10세기, 전승) |
| 본관 | 온양 방씨 |
방운(方雲)은 온양 방씨가 중시조로 받들며 1세로 셈하는 인물입니다. 시조 방지 이후 여러 대의 기록이 끊겨, 온양 방씨의 세계는 사실상 방운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그의 생애는 족보와 문중 유래비, 향토 사전과 신문 연재에 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며, 연도와 관직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문중 자료에 따르면 방운은 상주 출신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며, 태조부터 성종까지 여러 임금을 60여 년 동안 섬겼다고 합니다. 대장군을 거쳐 좌승지·지성사 등을 지내고 광종 때 상서좌복야에 올랐다고 하며, 연재에 따라 그 시기를 963년(광종 14)으로 적거나 903년으로 적습니다. 성종 때 거란이 침입하자(992년 또는 993년으로 적힘) 77세의 노장으로 공을 세워 온수군(溫水君)에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디지털아산문화대전은 그가 태조·광종·성종을 섬기며 공을 세워 온수군의 봉호를 받고 온양·아산·신창 일대를 사패지로 받았으며, 자손들이 온양에 살면서 상주 방씨가 온양 방씨가 되었다고 정리합니다.
임금이 만년의 그를 온수(온양)의 과안산 아래 살게 하고, 방씨를 우러러본다는 뜻에서 산 이름을 배방산(拜方山)으로 고쳤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지금 아산시 배방읍의 이름이 이 산에서 나왔으며, 조선 시대에는 '방씨를 물리친다'는 뜻의 배방(排方)으로 바뀌었다가 오늘날 배방(排芳)으로 쓰입니다. 울진 지역 신문 연재는 중시조의 아들 방헌주(方軒柱) 이후 본관이 상주에서 온양으로 바뀌었다고 적어, 아들의 이름을 방중탁(方仲鐸)으로 적는 다른 자료와 차이가 있습니다.
족보에 따르면 2세 방중탁은 목종 때 도첨의정승, 3세 방휴는 현종 때 거란 침입에 맞서 공을 세운 무장이었습니다. 신문 연재에는 중시조 온수군 방운의 신단(神壇) 사진이 소개되어 있으며, 문중은 그를 온양 방씨 1세조로 모셔 제향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신문 연재에 중시조 방운의 신단(神壇) 사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온양 방씨 전체가 그를 1세로 셈합니다. 족보에 따르면 아들 방중탁, 손자 방휴로 이어졌고, 12세 방우선 대 이후 13세에서 일곱 파로 나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