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문신 · 1362년 문과 급제 · 조선 출사를 거부한 절신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온양 방씨 |
방순(方恂)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온양입니다. 초명은 방득주(方得珠), 호는 만송당(晩松堂)이며, 문중은 시호를 문의(文毅)로 전합니다. 이름은 묘지명·신도비와 족보에는 方恂으로, 『고려사』·『고려사절요』에는 方旬으로 적혀 있습니다. 온양 방씨 15세로, 할아버지는 판서공파 파조 방서, 아버지는 밀직사 직학사 방언휘입니다.
1362년(공민왕 11) 문과에 급제했는데, 문중 자료는 정도전·이숭인과 같은 방(榜)이었다고 전하고, 이숭인의 『도은집』에는 그에게 보낸 시가 실려 있다고 소개됩니다. 이후 좌랑·대언·중서사인·성균관 좨주·판전교시사 등을 지냈습니다. 『고려사』 이자송전에는 우왕 때 좨주 방순이 개성소윤 한흥수와 함께 삼사좌윤 김정휘를 순위부에 고발해 유배 보낸 일이 실려 있습니다.
조선이 건국되자 예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동료 둔촌 이집과 함께 경기도 광주의 숯골(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숨어 지내며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고 전합니다. 디지털성남문화대전에 따르면 그는 숨어 지내다 붙잡혀 황해도 금촌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하며, 문중 자료도 같은 내용을 전합니다. 다만 아들 영화군 방운실(方芸實)과 손자들이 조선 개국원종공신에 오른 것은 막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혼인은 여말선초 명문가와 이어졌습니다. 부인은 조선 개국공신 윤호(尹虎)의 맏딸인 파평 윤씨이고, 딸 숙녕택주는 영의정 남재의 맏아들 남경문(南景文)에게 시집갔습니다. 그 아들 가운데 남지는 좌의정에 올랐고, 남휘는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와 혼인했습니다. 남구만의 『약천집』과 이색의 『목은집』 등에 이런 가계가 전합니다. 손자 방강(方綱)은 1447년 문과에 급제해 좌승지에 올랐고, 셋째 아들 방유량(方有良)은 성남 상대원동 보통골에 분가해 그곳 방씨 집성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옛 인하병원 자리)에 부인 파평 윤씨와 합장되었다가 1969년 성남시 개발로 이장했습니다. 이장 때 유골이 발견되지 않아 의장(衣葬)으로 모신 것으로 보이며, 문중 자료는 이장지를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양벌리로 전합니다.
아들 방운실(개국원종공신)·방희우·방유량 등을 두었고, 손자 방강은 좌승지에 올랐습니다. 방유량의 후손이 성남 상대원동 보통골에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외손으로 좌의정 남지, 정선공주의 부마 남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