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신우 方臣祐

고려 출신 원나라 환관 · 상락부원군 · 상락부원군파 파조(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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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267 ~ 1343
시대고려 후기(원 간섭기)
본관온양 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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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약력

방신우(方臣祐, 1267~1343)는 고려 출신으로 원나라 궁정에서 활동한 환관입니다. 어릴 때 이름은 소공(小公)이고, 원에서 망고태(忙古台)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온양 방씨 족보는 그를 13세 상락부원군파의 파조로 싣고 있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고려사』를 바탕으로 한 연구는 그의 본관을 상주(尙州)로 적고 있습니다. 문중은 상주·군위·신창 방씨를 같은 뿌리로 보아 온양으로 합쳐 왔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제현이 지은 「광록대부평장정사상락부원군방공사당비」에 따르면 증조는 방우현, 조부는 방량, 아버지는 방득세이며, 아내 이씨는 밀직사사 이광시의 딸입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중모현(지금의 상주 모동·모서면)의 아전 방득세의 아들이라고 적고, 『고려사』 환자전은 아버지 방득세가 아들 덕에 상주목사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충렬왕 때 궁중 급사로 있다가 1289년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원나라에 갔습니다. 원 성종의 모후 유성황후의 눈에 들어 천부대경 등을 거쳤고, 무종 때는 흥성태후를 모시며 장작원사·평장정사로 올랐습니다. 고려 출신 홍중희가 충선왕을 원 중서성에 무고하자 태후에게 충선왕을 변호해 홍중희를 유배 보내게 했습니다. 1310년에는 황태후의 명으로 고려에 와서 승려와 속인 300명을 모아 금자장경 사경을 감독했고, 그해 충선왕이 그를 중모군에 봉했습니다. 1312년 원이 귀순한 북방 번왕의 무리를 압록강 동쪽에 살게 하려 하자 "고려는 땅이 좁고 산이 많다"며 계획을 거두게 했습니다.

이후 태자첨사·휘정원사·저경사사를 지냈고, 원 조정에서 고려에 행성을 세워 원의 일부로 만들자는 입성 논의가 일 때마다 고려 편에 서서 이를 막았습니다. 충숙왕은 그를 상락부원군에 봉하고 삼중대광으로 올리며 추충돈신익량공신(문중 자료에는 추성돈신양절공신) 호를 내렸습니다. 1330년 귀국해 선흥사를 지었고, 1342년 다시 원에 불려 갔다가 이듬해 병으로 죽어 선흥사 뒷산에 묻혔습니다. 일곱 황제와 두 태후를 섬기며 강남의 토지 4천 무를 받는 등 큰 부를 누렸다고 합니다. 문중 일부 자료는 몰년을 1345년이나 1350년으로 적지만, 사당비와 백과사전은 1343년으로 적습니다. 그의 계통인 상락부원군파는 절손된 것으로 소개됩니다.

묘소

1343년 원나라에서 죽은 뒤 고려로 돌아와 자신이 중수한 선흥사(禪興寺) 뒷산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손

환관이었던 그의 계통인 상락부원군파는 절손된 것으로 소개됩니다. 형제 방신제는 광록대부공파의 파조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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