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문신 · 예문관제학·판도판서 · 판(도)판서공파 파조
| 생몰 | 1275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온양 방씨 |
방서(方曙)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온양 방씨의 대종인 판도판서공파(판서공파)의 파조입니다. 온양 방씨 13세로, 1269년 국자시 장원이자 평양윤을 지낸 문정공 방우선의 아들입니다. 그에 관한 내용은 대부분 온양 방씨 족보와 그것을 정리한 위키백과·신문 연재에 바탕하고 있으며, 『고려사』 같은 정사에 따로 실린 전기는 없습니다.
족보에 따르면 그는 1275년(충렬왕 1)에 태어났고 자는 원명(源明)입니다. 봉익대부로 예문관제학과 판도판서를 지냈다고 하며, 파 이름은 판도판서라는 벼슬에서 나왔습니다. 판도판서는 원 간섭기 고려에서 호구와 재정을 맡은 판도사의 으뜸 벼슬입니다. 문중 자료는 그를 장암공(壯岩公·莊岩公)으로 부르거나 시호를 장헌(莊獻)으로 적어 표기가 엇갈리며, 충렬왕 때 대제학을 지냈다고 소개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가족 관계도 여러 문헌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순천 김씨 족보는 판전교시사와 강릉존무사를 지낸 김천호(金天晧)를 그의 장인으로 적고 있고, 『석탄집』 부록의 방목은 고려 말 강직한 간관으로 이름난 석탄 이존오(李存吾)를 그의 외손으로 적고 있다고 소개됩니다. 아들로는 1342년 명경과에 급제해 밀직사 직학사를 지낸 방언휘(方彦暉)와, 1359년 대호군으로 정세운과 함께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1363년 공신에 녹훈된 방천봉(方天奉)이 전합니다. 방천봉의 녹훈은 『고려사』 공민왕 세가 1363년 11월 기사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문중 자료는 방언휘가 충목왕의 국구로 온천부원군에 봉해졌다고도 전하지만, 이는 족보 전승으로 다른 기록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방언휘의 아들이 고려 말 절신 방순이고, 그 후손이 성남 숯골과 보통골에 세거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보성군수 방진, 1774년 예조 수교문을 받았다는 판서공 후손, 근대의 방정환도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날 온양 방씨 일곱 파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판(도)판서공파의 파조입니다. 아들 방언휘·방천봉, 손자 방순으로 이어졌고, 후손으로 방진, 방우정, 방정환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