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정 方禹鼎

조선 후기 무신 ·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 · 『서정일기』 저자 · 구례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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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조선 후기(순조)
본관온양 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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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약력

방우정(方禹鼎)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온양입니다. 자는 구여(九汝), 호는 휘재(暉齋)입니다. 생몰년은 전하지 않습니다. 위키백과의 방정환 항목은 1860년에 펴낸 온양 방씨 대동보를 근거로, 소파 방정환이 판서공파 후손으로서 방우정의 아우 방우준(方禹準)의 5대손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우정도 판서공파의 일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그는 정조 때 무과에 급제했고, 1803년(순조 3) 주청사 겸 동지정사 심능건(沈能建)을 따라 청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811년 12월 평안도에서 홍경래가 난을 일으키자 관군인 서정군(西征軍)의 좌초관(左哨官)으로 출전해 정주성 함락에 공을 세웠습니다. 홍경래의 난은 서북 지방에 대한 차별과 세도 정치의 수탈에 반발해 일어난 대규모 봉기로, 봉기군은 청천강 이북의 여러 고을을 차지했다가 정주성에 들어가 넉 달 가까이 버텼습니다. 관군은 1812년 4월 성 밑으로 땅굴을 파고 화약을 터뜨려 성을 무너뜨린 뒤에야 정주성을 되찾았습니다.

방우정은 이 전투에 참여한 경험을 『서정일기(西征日記)』로 남겼습니다. 관군 측 지휘관이 전투 현장에서 겪은 일을 날짜별로 적은 기록이어서, 신문 성씨 연재들은 이 일기를 홍경래의 난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소개합니다. 그는 1816년 구례현감을 지냈고, 뒤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같은 이름이라도 한자가 다른 인물이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고려 충선왕 때 사헌부 장령으로 감악산 제사의 폐단을 상소한 방우정(方于楨)이 문중 자료에 따로 전하고, 디지털영천문화대전은 영천 대창면 운천리에 방우정(方禹楨)의 용암정사가 있다고 소개합니다. 이들은 『서정일기』를 남긴 방우정(方禹鼎)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후손

아우 방우준의 5대손이 방정환이라고 족보에 전합니다(판서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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