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화운동가·아동문학가·독립운동가 · 어린이날 제정, 『어린이』 창간
| 생몰 | 1899 ~ 1931 |
| 시대 | 대한제국·일제강점기 |
| 본관 | 온양 방씨 |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은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날을 만들고 우리나라 첫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한 아동문화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입니다. 호는 소파(小波)이며, 본관은 온양입니다. 위키백과는 1860년 온양 방씨 대동보를 근거로 그가 판서공파의 후손이며, 순조 때 구례현감을 지내고 병조참판에 추증된 방우정의 아우 방우준(方禹準)의 5대손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1899년 11월 9일 한성부 서부 적선방 야주현(야주개, 지금의 종로구 당주동 일대)의 상인 집안에서 아버지 방경수(方慶洙)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09년 매동보통학교에 들어갔다가 미동보통학교로 옮겨 1913년 졸업했고,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그만두었습니다. 1917년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딸 손용화와 혼인했고, 같은 해 청년 단체인 청년구락부를 조직했습니다.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들어갔으며,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문과 등사판 신문을 배포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받고 일주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1920년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에 들어가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1921년 김기전·이정호 등과 천도교소년회를 만들어 소년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쳤고, 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의 날'을 정했습니다. 1923년 3월에는 『어린이』를 창간했고, 같은 해 도쿄에서 아동문제 연구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했습니다. 그해 5월 1일 어린이날 기념식을 열고 '어린이날의 약속' 전단 12만 장을 뿌렸습니다. 1928년에는 세계 20여 나라 어린이가 참가한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아이를 '어린이'라 불러 '늙은이'·'젊은이'와 대등한 인격으로 높였고, 번안 동화집 『사랑의 선물』(1922)을 펴내고 동화구연가로 활약했습니다. 『어린이』를 통해 윤석중·이원수 같은 아동문학가를 길러 냈습니다. 1931년 7월 23일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57년 그를 기리는 소파상이 제정되었고, 1978년 금관문화훈장,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1971년 서울 남산에 세운 동상은 1987년 서울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처음 홍제동 납골당에 안장되었다가 1936년 서울 중랑구 망우리(지금의 망우역사문화공원)로 옮겨졌습니다. 1983년 묘소에 '소파 방정환 선생의 비'가 세워졌고, 2017년 묘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온양 방씨 판서공파로, 방우정의 아우 방우준의 5대손이라고 족보에 전합니다. 부인은 손병희의 딸 손용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