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 方震

조선 중기 무신 · 보성군수 · 이순신의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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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514
시대조선 중기
본관온양 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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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약력

방진(方震)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온양입니다. 위키백과는 옛 관향을 상주로 적고 있으며, 그의 딸이자 이순신의 부인인 방씨를 '상주 방씨'로 적는 자료도 있습니다. 족보에 따르면 그는 판서공파로 중시조 방운의 22세손이며, 1514년(중종 9) 충청도 온양(지금의 아산시 염치읍)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평창군수를 지낸 방흘(方屹, 초명 방홍), 아버지는 영동현감을 지낸 방국형(方國亨)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자(字)인 중규(中規)로 적는 자료도 있습니다.

그는 활을 잘 쏘는 무인으로 이름이 있었고, 중종 때 무과에 급제했다고 전합니다. 『제주읍지』 선생안에는 1535년부터 1537년까지 제주 지역 현감으로 근무한 기록이 있다고 소개되며, 뒤에 보성군수를 지냈습니다. 광주 이씨 이준경과 친분이 있었고, 이준경이 병조판서로 있을 때 그 휘하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1565년 무렵 스물한 살의 이순신이 그의 딸과 혼인해 온양으로 옮겨 와 처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방진은 온양 일대의 부유한 집안이었고, 이순신이 무과 공부를 시작하도록 격려하고 뒷바라지했다고 전합니다. 이순신은 1576년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이충무공전서』의 「방부인전」에는 이런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어느 날 화적이 집 안마당까지 들어오자 방진이 활로 맞섰는데 화살이 떨어졌습니다. 계집종이 도적과 내통해 화살을 빼돌린 것이었습니다. 이때 영특한 딸이 베 짜는 데 쓰는 대나무 다발을 다락에서 내던지며 "아버님, 화살 여기 있습니다" 하고 외치자, 방진의 활솜씨를 두려워한 도적들이 달아났다고 합니다.

방진의 재산과 집은 데릴사위인 이순신에게 이어졌습니다. 울진신문의 성씨 연재는 지금 아산 현충사 자리가 방진의 집터라고 소개합니다.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해 우의정에 추증된 뒤 부인 방씨는 정경부인에 봉해졌고, 이때의 고신교지는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관련 고문서의 하나로 현충사에 전합니다. 방진은 통훈대부로, 부인 남양 홍씨는 숙인으로 추증되었습니다.

묘소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 부근 방화산(方華山)에 부인 남양 홍씨와 함께 묻혀 있습니다. 묘비문은 외후손인 덕수 이씨 이종국이 지었다고 합니다.

후손

외동딸이 이순신의 부인 정경부인 방씨로, 그 자녀 이회·이열·이면 등을 통해 덕수 이씨 충무공 후손으로 이어졌습니다. 형 방인, 아우 방웅과 조카 방희민 등이 족보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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