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축구 선수, 감독·해설가

| 생몰 | 1953 |
| 시대 | 현대 |
| 본관 | 연안 차씨 |
차범근(1953~)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 해설가입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였고, 1978년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독일 프로 축구 리그 분데스리가에 데뷔해 다름슈타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뛰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차붐'이라는 애칭으로 불렸고, 한국에서는 '갈색 폭격기'로 불렸습니다.
1972년 고려대학교 학생 신분으로 최연소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이라크와의 AFC 아시안컵에서 데뷔했습니다. 1986년 월드컵까지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뛰었고, 197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기여했으며 1972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했습니다. 국가대표로 130경기 이상에 출전해 58골을 넣어 대한민국 선수 A매치 최다 골 기록으로 소개되며, 한국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습니다(기록은 정비 과정에서 수정되어 왔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통산 308경기 98골을 넣어 당시 외국인 선수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1980)와 바이어 레버쿠젠(1988)에서 두 번 UEFA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0시즌 동안 옐로카드를 단 한 장만 받았다는 페어플레이로도 이름이 났습니다. 은퇴 후에는 울산 현대 감독,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MBC·SBS의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1978년 12월 다름슈타트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나 공군 병역 문제로 계약이 파기되어 한동안 돌아와야 했습니다. 1979년 7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스카우트되며 본격적인 독일 생활을 시작했고, 1980년 UEFA컵 우승, 1981년 DFB-포칼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1986년 월드컵이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었고, 1997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은퇴 후 독일 분데스리가 레전드 네트워크의 대사로도 활동한다고 소개됩니다.
가족 가운데 아들 차두리도 독일 분데스리가와 대표팀에서 뛴 축구 선수 출신입니다. 사생활은 이 초안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현존 인물이므로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아들 차두리도 축구 선수 출신 지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