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리석 車利錫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비서장, 호는 동암, 신민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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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881 ~ 1945
시대일제강점기
본관연안 차씨

생애 약력

차리석(1881~1945)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오래 일한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연안, 호는 동암입니다. 평안북도 선천 출신으로, 아버지 차시헌과 어머니 서시은 사이의 4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려고 서입환이라는 가명을 썼습니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1900년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해 1904년 제1회로 졸업했습니다. 1908년 안창호가 세운 대성학교 교사로 후학을 길렀고, 안창호와 양기탁이 주도한 신민회 평양지회 평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11년 신민회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어 8년형을 선고받고 3년을 복역했고, 3·1 운동 뒤인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당 간부로 활동했습니다.

1921년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냈고, 1932년 국무위원을 거쳐 1935년 11월 비서장에 선출된 뒤 1940년과 1944년에도 국무위원 겸 비서장에 선출되었습니다. 1945년 8월 충칭에서 광복을 맞았으나 환국 준비로 쌓인 과로로 쓰러져 9월 9일 환국 직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95년 9월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신민회와 105인 사건

신민회는 안창호와 양기탁이 주도한 비밀 결사로, 교육과 산업으로 독립 기반을 닦으려 했습니다. 1911년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모의를 구실로 이 조직을 탄압했으며, 차리석은 이 사건으로 8년형을 받았습니다.

임시정부의 살림꾼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항저우, 충칭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비서장으로 행정을 맡았습니다. 김구 중심의 임시정부 활동이 이어지도록 문서와 살림을 챙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32년 홍커우공원 의거 이후 일제의 추적이 심해져 항저우 등으로 이동하던 시기에도 같은 일을 했다고 전합니다.

환국 직전의 별세

1945년 광복 소식을 듣고 환국 준비에 몰두하다 쓰러져 9월 9일 사망했습니다. 병상에서 '광복이 되었는데 왜 귀국하지 못하고 죽어야 하느냐'며 애통해했다고 전합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본처 강리성과 두 딸(차영애·차영희)이 있다고 전합니다. 강리성은 상하이에서 밥집을 하며 윤봉길·이봉창 등의 비밀 모임 장소를 제공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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