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인, 한국은행 부총재, 제14대 재무부 장관, 6·10통화개혁

| 생몰 | 1918 ~ 1993 |
| 시대 | 대한민국 |
| 본관 | 영양 천씨 |
천병규(1918~1993)는 대한민국의 금융인이자 정치인으로 본관은 영양, 호는 동백입니다. 아버지는 천관근, 어머니는 권분희입니다. 안동공립보통학교와 대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사카 대학 상과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위키백과에는 사망 연도가 본문에는 1993년 7월 19일로, 정보 상자에는 1939년으로 서로 다르게 적혀 있는데, 이 페이지에서는 본문의 1993년을 따랐습니다.
1942년 조선은행에 입사했고, 1950년 한국은행 초대 동경지점장이 되었습니다. 1956년에는 한국은행 부총재와 재무부 차관을 지냈습니다. 1961년 재무부 장관이 되어 6·10통화개혁을 주도하고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수립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1963년 증권파동에 연루된 혐의로 3개월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1967년 아시아개발은행 상임이사가 되었고, 1974년 주태국·라오스 대사, 1976년 주스위스 대사를 지냈으며 이후 제10대 국회의원(유신정우회, 지명직)을 지냈습니다. 금융과 경제 정책을 오래 맡은 관료로 영양 천씨를 대표하는 경제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병규는 1961년 재무부 장관으로서 경제 재건 초기의 금융 정책을 맡았습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통화개혁을 주도했다고 적지만, 개혁의 구체적 내용과 평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 상임이사, 주태국·라오스 대사, 주스위스 대사를 지내며 경제와 외교 분야로 활동 폭을 넓혔습니다.
천병규의 사망 연도는 위키백과 본문과 정보 상자가 다르고, 국회의원 당선 연도도 선거 표와 본문이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원 자료로 확인해야 하므로, 이 페이지에서는 생애의 큰 줄기만 소개했습니다.
한국은행 부총재와 재무부 장관을 지낸 금융인이며, 1961년 통화개혁을 이끈 것으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