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독립운동가, 대한인국민회·흥사단 활동, 건국훈장 독립장
| 생몰 | 1879 ~ 1945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영양 천씨 |
천세헌(千世憲, 1879~1945)은 일제강점기 미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영양입니다. 1879년 5월 17일 경상도 문경현(지금의 경북 문경시 산양면 일대)에서 태어나 1945년 6월 14일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산에서 한문을 배운 뒤 상경해 외국어학교에 입학했고, 고종 때 외부주사를 지냈습니다.
1903년 하와이로 이주했고 1910년에는 뉴욕으로 옮겨 대한인국민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14년 안창호 등이 창립한 흥사단에 가입했고, 1917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뉴욕지방총회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1919년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서 임시정부의 승인과 지원을 결의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1921년 대한민족대표단의 일원으로 상해에 파견되었고, 1922년에는 임시의정원에 국민대표회 추진을 지원해 달라는 청원서를 냈습니다. 안창호와 함께 시사책진회를 조직했으며 임정을 새롭게 만들자는 창조파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시카고에서 동포 생활과 자치를 도왔고,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에서도 활동했으며 1940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습니다. 1942년에는 미국 측과 미주 한인의 대일참전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습니다.
천세헌은 하와이와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미주 각지의 한인 사회에서 활동했습니다.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을 통해 안창호의 노선에 함께한 인물로 소개됩니다.
1921년 상해에 파견되어 임시정부 쪽과 접촉했고, 임정을 개편하자는 창조파 입장에서 국민대표회 추진을 지원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 사이의 노선 차이가 컸던 시기의 활동입니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습니다. 영양 천씨 문중이 자랑하는 독립운동가로 문중 소개 글에도 이름이 오릅니다.
미국에서 별세했으며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