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알성시 문과 장원, 사헌부 지평·집의
| 생몰 | 1851 ~ 1931 |
| 시대 |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
| 본관 | 영양 천씨 |
천광록(千光祿, 1851~1931)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양, 자는 화선, 호는 만은입니다. 1851년 경상도 선산군(지금의 구미시 장천면)에서 태어났고 1931년 경북 의성에서 7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천창억, 어머니는 광산 김씨이며, 부인은 성산 배씨(배세헌의 딸)입니다.
1892년(고종 29) 알성시 문과에서 갑과 장원으로 급제했습니다. 성균관 전적을 거쳐 1893년 사헌부 지평이 되었고, 1894년에는 일본을 배척하자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습니다. 같은 해 말 사헌부 집의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했습니다. 조선시대 영양 천씨 문과 급제자는 1명으로 기록되는데, 그가 바로 이 사람입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된 뒤에는 옥책관으로 임명되어 상경했고, 1900년에는 말을 하사받았습니다. 1902년에는 의성 고운사에 연수전을 짓는 공사를 맡았는데,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거나 공사비를 횡령하지 않고 투명하게 진행해 주민들의 칭송을 받았고 고종의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1910년 한일병합 뒤에는 상소를 올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알성시는 임금이 성균관 문묘에 참배한 뒤 치르던 특별 과거입니다. 갑과 장원은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영양 천씨의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가 1명뿐이라는 기록을 생각하면 문중에서 매우 뜻 깊은 일로 기억됩니다.
의성 고운사 연수전은 고종과 관련된 건물로 알려진 곳입니다. 천광록이 공사를 맡아 백성의 부담 없이 투명하게 진행했다고 전해지는 점이 그의 평판을 보여 줍니다.
경북 의성에서 별세했으며 묘소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현손으로 천현제가 있다고 합니다.
1892년(고종 29) 알성시 문과에서 갑과 장원으로 급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