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여인을 즐겨 그린 한국화가, 홍익대 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생몰 | 1924 ~ 2015 |
| 시대 | 대한민국 |
| 본관 | 영양 천씨 |
천경자(千鏡子, 1924~2015)는 한국의 화가로 본명은 천옥자(千玉子)이며, 도쿄 유학 시절 경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본관은 위키백과 분류와 문중 소개 글에 영양 천씨로 올라 있습니다. 1924년 11월 11일 전남 고흥군 고흥읍에서 태어나 2015년 8월 6일 미국 뉴욕에서 90세로 세상을 떠났고, 부음은 2015년 10월에 알려졌습니다.
고흥공립보통학교와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프랑스 파리의 아카데미 고에쓰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1942년 '조부', 1943년 '노부'가 입선했고, 1953년 '생태', 1962년 '원', 1973년 '길례언니', 1977년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8년 '초원Ⅱ', 1982년 '황금의 비', 1989년 '막은 내리고' 등을 그렸습니다. '초원Ⅱ'는 2009년 12억 원에 낙찰되어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1954년부터 1973년까지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로 일했고, 1972년 베트남전 종군화가로 참여했으며, 40대 후반부터 70대 초반까지 해외 스케치 여행을 12차례 다니며 '천경자 풍물화'를 개척했습니다. 1978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고, 1979년 대한민국예술원상과 198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1998년에는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고, 2007년 고향 고흥에 천경자전시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천경자는 여러 차례의 해외 스케치 여행에서 얻은 풍물을 화폭에 담아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었습니다. 꽃과 여인, 뱀 등의 상징은 그의 그림을 알아보게 하는 특징으로 소개됩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미인도'의 진위 논란이 일었습니다. 천 화백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1991년 진품으로 판정했고 국립현대미술관도 진품이라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이후 천 화백은 예술원 회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1999년 위조범의 주장과 2016년 프랑스 감정단의 위작 보고서가 있었으나 미술관은 이를 반박했습니다. 논란은 지금도 의견이 갈리는 문제이므로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2007년 고향 고흥에 천경자전시관이 개관했고, 고흥군은 2024년 탄생 100주년 특별전을 열었습니다.
천옥자(千玉子)이며 도쿄 유학 시절 경자로 개명했습니다.
위키백과 분류와 문중 소개 글에 영양 천씨로 올라 있으나, 본문에 직접 명시된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