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한국 고대사 학자, 조선일보·동아일보 편집국장, 호 후석

| 생몰 | 1925 ~ 1991 |
| 시대 | 대한민국 |
| 본관 | 영양 천씨 |
천관우(千寬宇, 1925~1991)는 언론인이자 역사학자로 본관은 영양, 호는 후석(後石)입니다. 1925년 8월 10일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991년 1월 15일 서울에서 6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사학과에서 1949년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신문학 연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1951년 대한통신 외신부 기자로 언론에 입문했고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1958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되었으며 칼럼 '만물상'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세계일보(민국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에서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냈습니다. 1968년 『신동아』 기사 일로 중앙정보부에 구속된 적이 있으며, 1971년 동아일보 이사직에서 퇴임한 뒤에는 언론 관련 직업을 갖지 않았습니다.
한국 고대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민족주의 계열의 학자로 평가받고, 대표 저서로 『가야사연구』와 『한국사의 재발견』이 있습니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1973년 시국선언을 주도했으며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에 서명했습니다. 반면 1981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회장을 맡고 전두환 정권에서 자문 관직을 맡은 일로 송건호 등 옛 동료들에게 변절이라는 비판을 받아 활동이 고립되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금관문화훈장, 한국출판문화상, 외솔상을 받았습니다.
천관우는 한국전쟁 직후 언론에 들어와 조선일보 편집국장까지 올랐고, 이름난 칼럼 '만물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언론 자유를 지키려는 활동 속에 구속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야사연구』는 가야사를 정면으로 다룬 연구로 꼽힙니다. 『한국사의 재발견』 등을 통해 대중에게 고대사를 알린 역할도 했습니다. 구체적인 학설의 평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전반기와 달리 1980년대 초 정부 자문 관직을 맡은 후반기 행적은 평가가 엇갈립니다. 위키백과는 이 때문에 옛 동료들에게 비판을 받았다고 적습니다.
『가야사연구』와 『한국사의 재발견』이 대표 저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