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당시인의 한 사람, 『고죽유고』의 시인(호 고죽)
| 생몰 | 1539 ~ 1583 |
| 시대 | 조선 |
| 본관 | 해주 최씨 |
최경창(崔慶昌, 1539~1583)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해주이며 자는 가운, 호는 고죽(孤竹)입니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습니다. 해주 최씨 전한공파로 최만리의 후손입니다.
1568년(선조 1)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거쳤고 1582년 종성부사를 지냈습니다. 1583년 방어사의 종사관으로 임명되어 서울로 올라오던 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를 잘 지어 이이·송익필·이달·최립·백광훈·이산해·하응림과 함께 '팔문장계'에 들었고, 흔히 백광훈·이달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꼽힙니다.
기생 출신의 첩 홍랑과 시문을 주고받은 일화로 유명하며, 피리도 잘 불었습니다. 어린 시절 영암 바닷가에서 해적에게 포위되자 퉁소를 불어 해적들이 신이 부는 소리로 여겨 흩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저서로 『고죽유고』가 있고 청백리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1568년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거쳐 1582년 종성부사가 되었고, 이듬해 방어사의 종사관으로 상경하는 도중 별세했습니다.
당시풍의 맑은 시를 지어 삼당시인으로 불렸고, 이이·송익필 등과 '팔문장계'로 함께 거론되었습니다. 박세채가 쓴 「고죽시집 후서」가 전기 자료로 소개되는데, 박세채의 『남계집』에 실려 있습니다.
함경도 경성에서 만난 홍랑과 이별할 때 시를 주고받은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남학명의 글에는 홍랑에게 준 시의 서문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현손 최규서는 영조 때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조상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입니다.
현손이 영의정 최규서로 전합니다. 최만리의 후손으로 전한공파에 속합니다.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조선 중기 시인으로 호는 고죽입니다.
최경창과 시를 주고받은 기생 출신의 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최규서가 현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