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위정척사파 유학자·의병장

| 생몰 | 1834 ~ 1907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경주 최씨 |
최익현(崔益鉉)은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으로 경기도 포천 출신이다. 아버지는 최대이며, 14세에 벽계의 대학자 이항로의 문하에 들어가 가장 촉망받는 제자로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이어받았다. 신창현감·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등 실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대원군의 퇴진을 이끌어내 '봉명조양(鳳鳴朝陽)'이라는 칭송을 받았고,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도끼를 지고 광화문 앞에 엎드려 '병자척화소(丙子斥和疏)'를 올린 일로 유명하다. 단발령이 내려지자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전라북도 태인에서 80여 명으로 의병을 일으켜 900여 명까지 늘렸으나 관군에 의해 체포되어 일본 쓰시마섬(대마도)으로 압송되었다. 그곳에서 단식과 풍증으로 순국하였다. 저서로 《면암집(勉菴集)》이 있으며, 채용신이 그린 초상이 전한다. 1928년 종묘에 배향되었고, 손자뻘 후손인 최창규(1937~)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장남 최영조 등 아들들을 두었으며, 후손이 경주 최씨 문중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