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출신으로 원 순제의 황후에 오른 인물, 몽골 이름 울제이쿠투
| 생몰 | 1315 |
| 시대 | 고려 후기·원나라 |
| 본관 | 행주 기씨 |
기황후(奇皇后)는 고려 후기에 태어나 몽골제국(원)의 제14대 카안 순제 토곤테무르의 황후가 된 여성입니다. 본관은 행주이며 아버지는 총부산랑을 지내고 훗날 영안왕에 봉해진 기자오입니다. 몽골 이름은 울제이쿠투(완자홀도)이고, 오빠 기철이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1315년생으로 적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생애의 끝을 알 수 없다고 하여 1370년이라는 몰년은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대백과에 따르면 1333년(충숙왕 복위 2) 원나라 휘정원사 독만질아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었습니다. 순제가 총애하자 정후였던 타나시리가 시기해 고초를 겪었고, 타나시리 일족이 정계에서 밀려난 1335년 이후 황후 책봉 움직임이 있었으나 승상 바얀 등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339년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낳았고, 이듬해 바얀 세력이 물러난 뒤 4월에 제2황후로 책봉되었습니다.
황후가 된 뒤에는 반대 세력을 몰아내고 휘정원을 자정원으로 바꾸어 그것을 배경으로 큰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1355년 아들이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이듬해부터 순제의 양위를 통해 아들을 황제로 올리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권세를 등에 업고 고려의 기씨 일족이 득세했는데,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추진하며 오빠 기철 등을 처형하자 황후는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후 기황후는 1361년 홍건적이 침입해 고려가 혼란한 틈을 타 공민왕을 폐위하고 다른 인물을 고려왕으로 세우려 했으며, 1364년에는 최유가 원나라 군사 1만을 이끌고 덕흥군과 기삼보노를 호위해 고려를 침공했으나 고려군에게 패했습니다. 1365년 제1황후가 죽은 뒤 정후에 올랐고 더 이상 양위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1368년 명나라 군대가 대도를 점령하자 순제와 응창으로 물러났으며, 이후의 행적은 『경신외사』에 일부 실려 있으나 마지막은 알 수 없습니다. 1370년 순제가 죽은 뒤 아들이 소종으로 즉위했습니다.
1333년 궁녀가 되어 1339년 아들을 낳고 1340년 제2황후, 1365년 이후 정후에 올랐습니다.
1356년 공민왕이 부원 세력을 숙청하며 오빠 기철 등이 주살되었고, 기황후는 이에 분노해 고려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묘소는 전하지 않으며 최후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아들 아유시리다라(소종)가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즉위했습니다.
행주 기씨입니다. 아버지는 기자오, 오빠는 기철입니다.
1340년 제2황후로 책봉되었고, 1365년 제1황후가 죽은 뒤 정후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