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 직후 결사대를 조직해 을사오적 암살을 시도한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독립장
| 생몰 | 1878 ~ 1928 |
| 시대 | 대한제국기·일제강점기 |
| 본관 | 행주 기씨 |
기산도(奇山度, 1878~1928)는 대한제국기에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결사대를 조직해 을사오적 암살을 시도한 독립운동가입니다. 본관은 행주이며 전남 장성 출신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기삼연의 종손이며 기재의 맏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생몰년은 위키백과의 인물 목록을 따랐고, 대백과는 출생일을 1878년 10월 16일로 적습니다.
일찍이 기독교계 학교의 교사를 지냈다고 하며, 나라를 식민지로 만드는 데 앞장선 사람들을 처단해 식민지화를 막고자 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1월에 박종섭·박경하·안한주·이종대 등과 저격 무기를 구입하고, 손성원·박용종·김필현·이태화 등을 보내 대상들의 동정을 살피게 했습니다. 한편 1906년 이근택의 집에 잠입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자료마다 설명이 달라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무고문 마루야마의 부하가 결사대의 본부였던 한성모의 집을 습격하면서 박종섭·박경하·안한주·이종대와 함께 붙잡혔습니다. 같은 사건에 연루된 인물 가운데 김석항은 1906년 5월 평리원 재판에서 가장 높은 형인 징역 3년형을 받았다고 하며, 기산도 역시 이 재판의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세부 형량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출옥한 뒤에는 다친 다리를 이끌고 일생을 떠돌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후의 행적은 대백과에 자세히 실려 있지 않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종조부뻘인 기삼연과 함께 장성 지역의 항일 가풍을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1905년 11월 결사대를 조직해 무기를 구하고 대상자의 동정을 살폈으나 본부가 습격당해 붙잡혔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