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정변 주체의 한 사람, 육군 준장, 민주공화당 사무총장·국회의원, 호는 공현(公賢)

| 생몰 | 1923 ~ 1985 |
| 시대 | 현대 |
| 본관 | 해평 길씨 |
길재호(1923~1985)는 평안북도 영변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본관은 해평, 호는 공현(公賢)이라고 소개됩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졸업해 6·25전쟁에 참전했고 1963년 준장으로 예편했습니다.
육사 8기 동기인 김종필 등과 5·16 군사정변의 핵심 세력이 되었으며, 군정기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법사위원장 등을 맡았습니다. 1963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금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67년 재선되었으며, 1966년부터 약 3년 반 동안 공화당 사무총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1970년 무임소장관을 지냈고, 1971년 '10·2 항명 파동'에서 내무부장관 해임건의안에 찬성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이후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받았다고 하나 세부는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1980년대에는 생명보험협회 회장을 지냈고 1985년 별세했습니다. 정치적 평가는 시각에 따라 갈립니다.
육사 8기로 임관한 뒤 6·25전쟁에 참전했고, 박정희 정권의 출범을 연 5·16 군사정변에 참여했습니다. 군정 때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법사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1963년과 1967년 금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66년부터 약 3년 반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을 맡았다고 합니다. 1970년에는 무임소장관을 지냈습니다.
1971년 내무부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에서 정부·여당의 뜻에 맞서 찬성표를 던졌고 이 일로 의원직을 내놓았습니다. 이후의 조사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자료마다 달라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