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평 길씨(海平 吉氏) — 고려 말 삼은의 한 사람 야은 길재를 배출한 길씨의 대표 본관으로 전해집니다. 선산 길씨라고도 합니다.
고려 말 삼은의 한 사람 야은 길재를 배출한 길씨의 대표 본관으로 전해집니다. 선산 길씨라고도 합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해평 길씨 인구는 약 35,823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길씨라도 본관(해평)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해평 길씨(海平 吉氏)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옛 선산 지역)을 본관으로 합니다. 『해평길씨세보』는 송나라에서 고려로 건너온 8학사의 한 사람 길당(吉唐, 吉瑭으로도 적음)을 시조로 전하며, 고려 문종 때 참지정당문학에 올라 해평백(海平伯)에 봉해져 해평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일부 자료는 그가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왔다고 적어 출처가 갈립니다. 길당 이후의 세계가 전하지 않아, 고려 후기 성균관생원을 지낸 길시우(吉時遇)를 1세조로 삼아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길시우의 증손으로 소개되는 인물이 길재입니다(위키백과 해평 길씨 항목에는 길재의 세차를 '증손'과 '4세손'으로 달리 적은 대목이 있습니다).
'선산 길씨'는 해평 길씨의 다른 이름으로, 통계청 집계에서는 두 표기가 따로 잡혀 합쳐서 헤아립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해평 길씨 22,187명, 선산 길씨 13,636명으로 모두 35,823명입니다. 길씨 전체는 38,173명(74위)으로 집계되었는데, 해평·선산 외의 본관에 대해서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신라 인물 길문·길선은 지금의 길씨와 연결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은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 길재입니다. 1386년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 박사·문하주서를 지냈으나 고려가 기울자 낙향했고, 조선 건국 뒤에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사양했습니다. 고향 선산에서 후학을 가르쳐 그의 학통은 김숙자·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으로 이어졌고 조선 사림의 뿌리로 평가됩니다. 아들 길사순은 세종 때 벼슬에 나아갔다고 전합니다.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는 6명, 무과 14명으로 소개됩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길회가 대표적입니다.
길재의 아버지 길원진이 금주(금산) 지사로 있을 때 길재가 함께 와 머물렀고, 신면의 사위가 되어 금산 부리면 일대에 정착한 것이 입향의 시작이라고 합니다(유최기의 「불이당기」). 지금도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와 부리면 불이리가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으며 금산군에는 약 1,349명이 산다고 합니다. 한편 경기 여주·파주, 강원 화천·춘천, 전북 정읍·고창·무주, 전남 장성·순천·구례, 경남 사천·하동·함양·거창에도 세거지가 있다고 하며, 평안북도 선천·영변·태천·운산·박천과 평안남도 맹산·순천에도 집성촌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20세기 평안도 출신 인물 길선주·길영희·길창덕·길재호의 출신지와도 맞물립니다.
근현대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이자 평양 대부흥운동의 주역 길선주, 제물포고 초대 교장 길영희, 5·16 주체이자 공화당 사무총장 길재호와 제6~10대 국회의원 길전식, 『꺼벙이』의 만화가 길창덕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밖에 길자연(목사), 길환영(전 KBS 사장) 등 생존 인물은 이 문서에서 별도 소개하지 않습니다.
22세부터 38세까지 항렬자(돌림자)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22세 식(植), 23세 병(炳), 24세 배(培), 25세 종(鍾), 26세 순(淳), 27세 상(相), 28세 열(烈), 29세 재(在), 30세 현(鉉), 31세 원(源), 32세 림(林), 33세 형(炯), 34세 규(奎), 35세 호(鎬), 36세 식(湜), 37세 근(根), 38세 환(煥)의 순서입니다(위키백과 기준이며 문중 확인이 필요합니다).
불이파는 충남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일대를 중심으로 한 갈래로, 야은 길재의 입향지와 이어집니다. 디지털금산문화대전은 불이파를 해평 길씨의 파의 하나로 들고, 다른 목록에는 '불이회인파'로 보입니다. 파조의 이름과 생몰년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길재는 아버지 길원진이 금주(금산)를 맡았을 때 따라와 신면의 사위가 되어 부리면 일대에 정착했다고 하며, 이 내용은 유최기의 「불이당기」에 근거합니다.
부리면 불이리의 청풍사(불이영당)는 길재의 영정과 위패를 모셔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고, 비각에는 야은선생유허비와 '백세청풍' 글씨의 비가 있습니다. 불이리와 남이면 성곡리는 해평 길씨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으며 금산군에는 약 1,349명이 살고 있습니다. 파의 종친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송천파는 해평 길씨의 분파 가운데 하나로 한 계보 정리 글에서 이름이 확인됩니다. 이름이 지명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조의 이름·생몰년·관직, 시호, 세거지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해평 길씨 세보와 종친회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학현파·금삼동파와 함께 목록에 오르지만 서로의 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학현파는 해평 길씨의 분파 가운데 하나로 계보 정리 글에서 이름이 확인됩니다. 지명을 딴 갈래로 보이나 어느 지역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조의 이름·생몰년·관직과 대표 후손, 집성촌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해평길씨세보』와 문중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금삼동파는 해평 길씨의 분파 가운데 하나로 계보 정리 글에서 이름이 확인됩니다.
파조의 이름·생몰년·관직, 시호, 세거지, 대표 후손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별 계보와 종친회는 『해평길씨세보』와 문중 자료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길당(시조·고려 8학사 전승), 길시우(1세조·성균관생원), 길재(고려 말 삼은·야은), 길사순(길재의 아들), 길회(선조 호종·원종공신), 길선주(목사·민족대표 33인), 길영희(제물포고 초대 교장), 길재호(5·16 주체·공화당 사무총장), 길전식(제6~10대 국회의원), 길창덕(만화가·꺼벙이)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해평 길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해평 길씨(海平 吉氏, 선산 길씨)는 구미 해평을 본관으로 하며, 2015년 인구는 35,823명입니다. 시조로는 송나라에서 건너온 8학사의 한 사람 길당을 전하지만 중간 세계가 전하지 않아 길시우를 1세조로 잇고 있습니다. 고려 말 삼은의 한 사람 길재를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습니다.
구미 금오산 아래에는 길재를 기리는 금오서원(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과 채미정(명승 제52호)이 있습니다. 금오서원은 1570년 무렵 건립이 추진되어 임진왜란에 불탄 뒤 1609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고 하며, 길재·김종직·정붕·박영·장현광 등이 배향된다고 소개됩니다. 사액 시기는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채미정은 1768년 선산부사 민백종이 세운 정자입니다. 길재의 묘소는 구미시 오태동에 있다고 전합니다.
충남 금산 부리면 불이리의 청풍사(불이영당)는 길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곳으로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이며, 남이면 성곡리의 성곡서원 터는 1613년 금산 최초로 세워졌다가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고 합니다.
분파는 자료마다 달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디지털금산문화대전은 불이파·예미파·수촌파·정문파·삼성파·독산파·대목동파·굴리마파·서당곡파·돈의파 10개를, 한국족보연구소 카페 글은 율리종파·불이회인파·장흥파·화천파·춘천파·영변파·옥천파·여주파·선천파·수안파·김해파·송천파·학현파·금삼동파 14개를 들고 있습니다. 대부분 세거지 이름을 딴 갈래로 보입니다. 아래 파별 카드는 확인된 내용만 적었습니다.
종친회의 공식 사이트와 연락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종회 소식은 구미시와 금산군의 문중 기관을 통해 확인하세요.
해평 길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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