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중학교·제물포고등학교 초대 교장, 노작교육으로 이름난 교육자, 3·1운동 학생 참여자

| 생몰 | 1900 ~ 1984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해평 길씨 |
길영희(1900~1984)는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난 교육자입니다. 해평 길씨로 소개되며(본관은 일부 자료에서만 확인됩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919년 3·1만세운동에 학생 대표로 참여해 옥고를 치렀고, 이 때문에 학적을 잃었다고 전합니다.
이후 배재고보를 거쳐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했으나, 3·1운동 전력으로 공립학교 정식 교사로 임용되지 못했고 해방 전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해방 뒤 인천중학교 초대 교장이 되었고, 1950년 설립된 제물포고등학교의 교장을 겸하며 1961년 정년퇴임까지 봉직했습니다.
안창호의 '유한흥국(流汗興國, 땀을 흘려 나라를 일으킨다)'을 교육 지표로 삼아 학생에게 노작교육을 강조했고, 무감독 시험 같은 교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퇴임 뒤에는 인천에서 대성학원을 운영하고 충남 예산 덕산에 가루실 농민학교를 세웠으며 1984년 3월 1일 별세했습니다. 2005년 3·1운동 참여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평양고보를 마치고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다니던 1919년 3·1만세운동에 학생 대표로 참여했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 일로 학교를 떠나 배재고보 편입,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진학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방 후 인천중학교 초대 교장을 맡았고 제물포고등학교 교장을 겸했습니다. 안창호의 '유한흥국'을 교육 지표로 삼아 노작교육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1961년 정년퇴임 뒤 인천에서 입시 재수생을 위한 대성학원을 운영했고 충남 예산 덕산에 가루실 농민학교를 세웠습니다. 2005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본관과 일부 경력은 자료마다 달라 확인이 필요합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