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육의 아들, 병조·호조판서를 지내고 전라도 대동법을 이은 문신이자 서예가, 시호 충숙
| 생몰 | 1616 ~ 1671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청풍 김씨 |
김좌명(金佐明, 1616~1671)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본관은 청풍, 자는 일정(一正), 호는 귀계(歸溪)이며 시호는 충숙(忠肅)입니다. 아버지는 영의정 김육, 어머니는 윤급의 딸이며, 동생이 청풍부원군 김우명입니다. 신익성과 선조의 딸 정숙옹주 사이에서 난 평산 신씨(신지강)와 혼인했고 아들은 김석주입니다. 명성왕후의 큰아버지가 됩니다.
163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44년 별시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습니다. 홍문관 수찬 때인 1648년 안변으로 귀양 갔다가 풀려나 이조좌랑이 되었고, 중시 급제 뒤 대사헌, 경기도관찰사, 도승지, 이조참판 등을 지냈습니다. 1662년 무렵 공조판서와 예조판서를 거쳐 호조판서에 올랐고, 1668년에는 병조판서 겸 수어사가 되었습니다.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서리들의 부정을 단속해 재정을 정리했고, 수어사로서 군율을 바로잡고 병기와 군량을 채웠으며 노량에서 대열병을 실시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전라감사 서필원과 함께 《전라도대동사목》을 주관해 1663년에 발표했습니다. 도연명체를 본받은 굵고 힘 있는 글씨로 이름이 높았고, 고성 유점사 춘파당대사비와 김육비 등의 글씨가 전합니다. 저서로 《귀계유고》가 있습니다.
당론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경계했다고 합니다. 제1차 예송에서는 서인을 편들지 않고 남인 쪽의 삼년설이 옳다고 보아 서인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후에 삼년설을 주장한 공로로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고 전합니다.
총명하고 호조·병조에서 공정하고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성질이 거만하고 귀공자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함께 전합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청릉부원군에 추봉되었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청풍 김씨 문의공파 묘역에 부인 평산 신씨와 합장되어 있으며, 아버지 김육의 신도비 옆에 1679년에 세운 자신의 신도비가 있습니다.
아들 김석주, 손자 김도연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