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의 장인이자 숙종의 외할아버지, 청풍부원군, 시호 충익
| 생몰 | 1619 ~ 1675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청풍 김씨 |
김우명(金佑明, 1619~1675)은 조선 후기의 외척 정치인으로 본관은 청풍, 자는 이정(以定), 시호는 충익(忠翼)이며 청풍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영의정 김육의 둘째 아들로 경기도 가평 잠곡에서 태어났고, 형은 김좌명입니다. 어머니는 파평 윤씨이고 부인은 은진 송씨(덕은부부인)로, 4남 2녀를 두었으며 맏딸이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입니다.
1642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 강릉참봉, 세자익위사 세마, 공조좌랑, 승정원 승지, 부평부사 등을 지냈습니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고 딸이 왕비가 되면서 국구가 되었고, 1661년 청풍부원군에 봉해지고 영돈녕부사가 되었습니다. 오위도총부 도총관과 호위대장도 맡았습니다.
1674년 민신의 대부복상 문제를 계기로 남인 허적 등과 손잡고 송시열 등 서인 산당을 공격해 "외서내남"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1675년 숙종 즉위 초 홍수의 변에서 복창군·복선군·복평군 삼형제를 제거하려 했으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고, 허목과 윤휴가 무고죄로 처벌하라고 상소했습니다. 명성왕후가 소복 차림으로 나타나 곡하면서 처벌은 무마되었으나 관직을 내려놓고 두문불출하다 그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홍수의 변은 명성왕후가 삼복(복창군·복선군·복평군)이 궁인과 사통했다고 주장하면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증거가 부족해 삼복은 풀려났고 이후 정배 처분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남인은 이후 명성왕후의 정치 간섭을 비난했고, 김우명은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강원도민일보는 김우명의 묘가 춘천 서면 능골에 있고, 손자 김도준이 조부의 시묘를 위해 춘천에 내려와 정착한 것이 춘천 청풍 김씨의 시작이라고 전합니다.
강원도 춘천시 서면 안보1리에 묘소가 있으며 강원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묘비문은 이민서가, 행장은 조카 김석주가 지었습니다.
맏딸 명성왕후는 숙종의 어머니이며, 정조의 비 효의왕후가 후손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