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법 확대와 시헌력 도입을 이끈 영의정, 호는 잠곡, 시호 문정

| 생몰 | 1580 ~ 1658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청풍 김씨 |
김육(金堉, 1580~165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입니다. 기묘사화로 스러진 김식의 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강릉참봉 김흥우, 어머니는 한양 조씨이고, 부인은 파평 윤씨입니다. 서인 계열이었으며 성혼·김장생·김상헌 등에게 배웠다고 전합니다.
1624년 음성현감을 시작으로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등을 지냈고, 1638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가 대동법 확대를 건의하고 수차 보급과 구황서 간행에 힘썼습니다. 이후 대사헌, 예조판서를 거쳐 1649년 우의정에 올랐고 영의정을 두 차례(1651년, 1655~1658년) 지냈습니다. 대동법을 충청도에 시행하도록 추진했고 전라도로의 확대도 구상한 핵심 인물로 꼽힙니다.
1653년부터 시행된 시헌력 도입과 수레 보급을 건의했고, 동전 주조와 유통을 건의해 평안도부터 동전 사용이 퍼지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구황촬요》와 《벽온방》을 증보·재간행하고 인조실록 편찬을 총괄했으며, 금속활자 재주조를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저서로 《잠곡필담》, 《유원총보》, 《송도지》, 《해동명신록》 등이 있고, 문집 《잠곡집》은 1668년에 간행되었습니다.
대동법은 공물을 쌀 등으로 걷는 제도로, 김육은 충청도관찰사 시절부터 이를 넓히자고 건의했습니다. 아들 김좌명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전라도대동사목》을 주관해 1663년에 발표한 일이 전합니다.
김육은 양평 미원서원, 청풍 봉강서원, 개성 숭양서원, 강동 청계서원에 배향되었고, 1704년에는 가평 잠곡서원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사망일은 자료마다 음력 9월 5일로 표기되나 양력 날짜 표기는 문서마다 다릅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일대 청풍 김씨 문의공파 묘역에 부인 파평 윤씨와 합장되어 있습니다. 1664년에 세운 신도비 머리돌에는 두 마리 이무기가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아들 김좌명·김우명, 손자 김석주, 손녀 명성왕후(현종의 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