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 김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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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김씨(淸風 金氏) — 충북 제천시 청풍면을 본관으로 하며,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김대유를 시조로 전합니다. 조선시대에 김육·명성왕후·효의왕후 등 정승과 왕비를 낸 명문입니다.

인구 — 약 110,815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청풍 김씨란

충북 제천시 청풍면을 본관으로 하며,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김대유를 시조로 전합니다. 조선시대에 김육·명성왕후·효의왕후 등 정승과 왕비를 낸 명문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청풍 김씨 인구는 약 110,815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청풍)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청풍 김씨의 뿌리와 역사

청풍 김씨(淸風 金氏)는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2015년 인구조사에서 110,815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985년 82,882명, 2000년 94,468명으로 꾸준히 늘어 왔습니다. 시조는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내고 청성부원군에 봉해진 김대유(金大猷)이며, 신라 경순왕의 네 번째 아들 김은열의 후손으로 전하고 원시조는 김알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청성은 청풍의 옛 이름이라고 하며, 후손들이 청풍에 집성촌을 이루면서 본관을 청풍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시조의 계보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위키백과는 김대유를 신라 경순왕의 4남 김은열의 6세손인 대장군 김순웅의 11세손으로 설명하고, 강원도민일보는 김은열의 18세손으로 적습니다. 나무위키는 비조를 김순웅으로 따로 적어 두었다고 합니다. 계보 서술이 출처마다 달라 한쪽으로 단정하기보다 병기해 읽는 것이 좋으며, 정확한 세계는 청풍김씨 대종회 자료와 족보로 확인해야 합니다.

본관지 청풍의 연혁

청풍은 고구려 때 사열이현이었다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청풍으로 고쳐 내제군의 영현이 되었습니다. 1018년 충주에 속했고 1660년 부로 승격되었으며, 1895년 청풍군이 되었다가 1914년 제천군에 병합되어 읍내면이 되었고, 1917년 청풍면이 되었습니다.

청풍면의 옛 관아 건물은 충주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제천 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 복원되었습니다. 팔영루는 청풍 관아의 정문이었던 누각이고, 응청각은 청풍현 수령의 객사였던 한벽루 곁에 있던 2층 건물이라고 소개됩니다.

청풍문화재단지 응청각
청풍문화재단지의 응청각 — 청풍 관아 한벽루 곁에 있던 건물로 소개됩니다. 인물 사진이 아닌 유적 사진 · CC BY-SA 3.0, Steve46814 · Wikimedia Commons
청풍문화재단지 팔영루
청풍문화재단지의 팔영루 — 청풍 관아의 정문이었던 누각으로 1870년 이직현 수령이 중건했다고 합니다. 인물 사진이 아닌 유적 사진 · CC BY-SA 3.0, Steve46814 · Wikimedia Commons

주요 파(派)

판봉상시사공파, 청로상장군공파, 영동정도총제공파

판봉상시사공파 (判奉常寺事公派)

판봉상시사공파는 청풍 김씨 시조 김대유의 3세손에서 5세손 사이에 갈라진 세 파 가운데 하나로, 파조는 김중방(金仲房)입니다. 위키백과는 청풍 김씨의 파로 판봉상시사공파·청로상장군공파·영동정도총제공파를 들며, 강원도민일보도 같은 세 파조를 소개합니다.

위키백과의 항렬자 표에서 이 파는 노(魯)·치(致)·종(鍾)·연(淵)·동(東) 등을 쓰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으나 표 일부가 깨져 있어 세대 배치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파의 개별 인물과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청로상장군공파 (淸虜上將軍公派)

청로상장군공파의 파조는 김중원(金仲源)이며, 강원도민일보는 그를 중시조로 소개합니다. 춘천으로 내려온 낙향조 김도준의 선대도 이 파의 김중원 계통이라고 전합니다.

위키백과의 항렬자 표에서는 청로상장군공파와 영동정도총제공파를 도(道)·성(聖)·묵(默) 등으로 함께 묶어 두었으나, 표가 깨져 있어 일부 세대 배치는 불확실하다고 밝힙니다. 파의 상세 계보는 청풍김씨 대종회 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동정도총제공파 (令同正都摠制公派)

영동정도총제공파는 시조 3~5세손 사이에 갈라진 세 파 중 하나로 파조는 김충(金忡)입니다. 위키백과는 영동정도총제공파로, 강원도민일보는 영동정공파로 적어 표기가 혼용됩니다.

이 파의 개별 인물과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기묘사화의 사림 김식과 김육·김좌명 등이 묻힌 남양주 삼패동 묘역은 문의공파 묘역으로 불리지만, 이 묘역이 세 파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는 자료만으로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김식(조선 전기 사림, 기묘사화), 김육(조선 영의정, 대동법), 김좌명(조선 호조·병조판서), 김우명(현종의 장인, 청풍부원군), 김석주(조선 우의정, 경신환국), 명성왕후(현종의 왕비), 김재로(조선 영의정), 김종수(조선 좌의정, 정조의 사부), 효의왕후(정조의 왕비), 김유정(소설가), 김규식(독립운동가)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청풍 김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청풍 김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김규식 (1881~1950)독립유공자 · 임시정부 · 대한민국장(1989)

세 갈래 파와 항렬

시조의 3세손에서 5세손 사이에 판봉상시사공파(파조 김중방), 청로상장군공파(파조 김중원), 영동정도총제공파(파조 김충)의 세 파로 나뉘었다고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파별 항렬자를 17세부터 40세까지 정리한 표도 싣고 있으나 표가 깨져 일부 세대 배치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므로, 실제 항렬은 문중에서 확인하시기를 권합니다. 파별 설명은 아래 카드를 참고하세요.

왕비를 낸 가문, 부자 영상

조선시대에 정승급 대신 8명, 대제학 3명, 종묘배향공신 4명, 왕비 2명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강원도민일보는 대과 급제자가 조선시대 전체 128명이라고 소개하며, 효종에서 정조 사이 정승 8명과 왕비 2명을 낸 4대 6상의 명문이라고 전합니다. 기묘사화 때 스러진 김식의 현손 김육이 대동법 확대를 이끈 영의정이 되었고, 그의 아들 김좌명과 김우명이 각각 판서와 청풍부원군이 되었습니다. 김우명의 딸이 현종의 비 명성왕후이고, 김좌명의 아들 김석주는 경신환국을 주도한 우의정이었습니다.

영조 때에는 김재로가 영의정에 올라 노론 청명당의 지도자가 되었고, 그 종손자 김종수가 정조의 사부를 거쳐 좌의정에 올랐습니다. 김시묵의 딸 효의왕후는 정조의 왕비가 되어, 명성왕후의 친정과 같은 가문에서 두 명의 왕비가 나온 셈입니다. 이 밖에 김길통(세종 때 한성판윤·호조판서를 지내 월천군에 봉해졌다고 전하는 인물)과 김덕수(기묘사화 뒤 벼슬하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써 이진선생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등이 문중 인물로 소개됩니다.

근현대 인물

근대에는 상하이 임시정부 외무총장과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이 이 본관 출신입니다. 소설가 김유정도 이 가문으로, 강원도민일보는 시조의 24세손으로 소개합니다. 같은 기사는 초대 부총리 김유택과 상공부장관을 지낸 김철수를 근현대 인물로 들고 있으며, 위키백과의 인물 목록에는 김윤식·김붕구·김황식 등의 이름도 올라 있습니다. 이들은 이번 자료에서 생애를 확인하지 못해 따로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청풍문화재단지 황석리 가옥
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 놓은 황석리 가옥 — 조선 후기에 황석리에 지은 목조 가옥을 1985년 이전했다고 합니다. 인물 사진이 아닌 가옥 사진 · CC BY-SA 3.0, Steve46814 · Wikimedia Commons

묘역과 제향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의 청풍 김씨 문의공파 묘역에는 김식, 김육, 김좌명, 김성응, 김시묵의 묘가 있고 2001년 경기도 기념물 제177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고시로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고 합니다. 김육의 신도비는 1664년에, 김좌명의 신도비는 1679년에 세워졌습니다. 김우명의 묘는 강원도 춘천시 서면 안보1리에 있고 강원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김재로의 묘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호라고 합니다. 이 외 가평 잠곡서원, 청풍 봉강서원·황강서원, 거창 완계서원 등에서 가문 인물이 제향되었습니다.

문의공파 묘역에는 병조판서와 훈련대장을 번갈아 지내며 성을 정비하는 등 국방 강화에 힘쓴 김성응(1699~1764)과 효의왕후의 아버지 김시묵(1722~1772)도 모셔져 있습니다. 김성응 묘역 입구의 신도비는 1796년에 세워졌고 김원행이 비문을 짓고 김시묵이 글씨를 썼다고 하며, 김육 묘역의 향로석은 6각 향탁을 본뜬 모양이라고 소개됩니다. 묘역의 석물은 역사적 의미와 함께 예술적 가치도 높게 평가됩니다.

세거지와 족보

집성촌으로는 충북의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와 청주시 강외면 쌍청리·봉산리, 경기의 광주시 남종면 귀여리·포천시 영중면 성동리·의왕시 왕곡동, 인천 강화군 하점면 신봉리와 부평구, 전북의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와 김제시 진봉면 신부리, 전남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 경북 상주시 이안면 가장리 등이 소개됩니다. 황해도 해주 일대에도 집성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족보는 옥하보(1637), 을미보(1715), 경오보(1750), 정사보(1857), 기미보(1919), 무술보(1958), 기사보(1989), 경인보(2010)가 간행되었다고 전합니다.

혼인 관계로는 김육이 파평 윤씨, 김우명이 은진 송씨, 김좌명이 평산 신씨, 효의왕후의 어머니가 남양 홍씨와 이어진다고 전합니다.

우리 청풍 김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청풍)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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