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세손 시절 스승이자 좌의정, 노론 청명당의 지도자, 호는 몽오, 시호 문충
| 생몰 | 1728 ~ 1799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청풍 김씨 |
김종수(金鍾秀, 1728~1799)는 정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풍, 자는 정부(定夫), 호는 몽오(夢梧)·진솔(眞率)·솔옹(率翁)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아버지는 김치만, 어머니는 풍산 홍씨(홍석보의 딸)이고 형은 산림 학자 김종후입니다. 종조부가 김재로, 5촌 당숙이 김치인이며, 어머니 쪽으로는 혜경궁 홍씨와 외6촌 사이입니다.
1750년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해 음서로 출사했고, 1766년 세손(정조)을 보필하는 세손궁 익위사에 보직되었습니다. 1768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세손의 사부로 정조를 가르쳤습니다. 정조가 즉위하자 이조·병조판서를 지냈고 1789년 우의정, 1793년 좌의정에 올랐으며, 규장각 제학과 대제학을 맡고 훈련도감 등 군영 대장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노론 청명당의 지도자로서 노론 벽파·시파와 거리를 두었고, 세손의 정통성을 인정하며 정조를 옹호했습니다. 외척의 정치 간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홍국영을 탄핵했고, 임금은 통치자이자 스승이며 아버지라는 군사부일체론을 강조했습니다. 1794년 채제공과의 대립 끝에 탄핵되어 평해와 남해로 유배되었고, 1795년 치사해 봉조하가 되었으며 1797년 기로소에 들어갔습니다.
정조 사후 노론 벽파의 영수로 몰려 1807년 역적으로 단죄되고 관작이 추탈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864년 복권되었고 1866년 정조 묘정에 다시 배향되었습니다. 생전에는 솔직하고 원칙을 중시했으며 한 번 정한 뜻을 집요하게 관철하는 성격이었다고 전합니다.
저서로 《몽오집》과 공저 《문신절제강목》 등이 있고, 정조의 명으로 전국 향토지를 모은 《해동읍지》 편찬을 주관했으며 《화성성역의궤》 편찬(1796)에도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처음 광주군 정림에 묻혔다가 하남시 광암동으로 옮겨졌고, 2015년 후손들이 의왕시 고천동으로 이장했다고 합니다.
아들 김약연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양손자 김동선이 가계를 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