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 신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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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신씨(平山 申氏) — 평산을 본관으로 하는 신(申)씨의 대표 계열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시조로 한다고 전해집니다.

인구 — 약 563,375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평산 신씨란

평산을 본관으로 하는 신(申)씨의 대표 계열로,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시조로 한다고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평산 신씨 인구는 약 563,375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신씨라도 본관(평산)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주요 파(派)

문희공파, 정언공파, 사간공파, 제정공파, 판사공파, 한성윤공파, 밀직공파, 봉상윤공파, 장령공파, 현령공파, 대제학공파, 온수감공파, 전서공파, 이상공파, 진사공파, 감찰공파, 판윤공파, 참판공파, 군수공파

문희공파 (文僖公派)

문희공파는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문희공(文僖公) 신개(申槩, 1374~1446)를 파조로 합니다. 신개는 종부시령 신안(申晏)의 아들로,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고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사간공파와 함께 평산 신씨 인구의 약 30%씩을 차지하는 큰 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개의 증손 신상(申鏛)이 판서를 지냈고, 신상의 손자 신잡(申磼)과 임진왜란 때의 장수 신립(申砬) 형제, 신립의 아들로 영의정에 오른 신경진(申景禛), 숙종 때 영의정 신완(申琓) 등이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신사임당도 문희공파 출신으로 전해집니다.

정언공파 (正言公派)

정언공파는 문희공 신개의 아우 신효(申曉)를 파조로 합니다. 신효의 증손 신영(申瑛)이 우참찬을 지냈고, 신영의 손자 신흠(申欽)은 인조 때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내며 조선 중기의 대표적 문장가로 꼽혔습니다.

신흠의 아들 신익성(申翊聖), 고종 때 좌의정을 지낸 신응조(申應朝) 등도 이 파의 후손으로, 무인을 많이 낸 문희공파와 달리 주로 문신 가문의 전통을 이어 온 것으로 소개됩니다.

사간공파 (思簡公派)

사간공파는 어사대부 신군평(申君平)의 손자로 시호가 사간(思簡)인 신호(申浩, ?~1432)를 파조로 합니다. 신호는 태종·세종 때 풍해도·전라도 관찰사와 호조판서를 지냈습니다. 문희공파와 함께 평산 신씨에서 후손이 가장 많은 파로 꼽힙니다.

신호의 6대손 신점(申點)이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올랐고, 숙종 때의 신임(申銋), 영조 때 형제 영의정 신만(申晩)·신회(申晦), 헌종 때 대제학 신재식(申在植) 등이 이 파에서 나왔습니다. 해공 신익희(申翼熙)도 사간공파 후손입니다.

제정공파 (齊靖公派)

제정공파는 신효창(申孝昌)을 파조로 합니다. 평산 신씨 세계도에 따르면 신효창은 신군평(申君平)의 손자이자 신수(申璲)의 아들로, 사간공파 파조 신호와는 사촌 간입니다.

평산 신씨 여러 파 가운데 사간공파·문희공파·정언공파·한성윤공파 등과 함께 후손이 많은 파로 꼽힙니다.

판사공파 (判事公派)

판사공파는 고려 말 판예빈시사·태복판사를 지낸 신득청(申得淸)을 분파조로 합니다. 신득청은 학자로 이름난 신현(申賢)의 손자로 전해집니다.

이 파는 조선 전기에 경상도 청송 진보면 합강리에 살다가 임진왜란 이후 청송 파천면 중평마을에 자리 잡았습니다. 1705년 신한태가 지은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은 서벽고택·사남고택과 함께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성윤공파 (漢城尹公派)

한성윤공파는 시조 신숭겸의 15세손으로 한성윤(漢城尹)을 지낸 신하(申夏, 1324~1416)를 파조로 합니다. 신하는 11세 연(衍)–12세 중명(仲明)–13세 군평(君平)–14세 규(珪)로 이어지는 계통의 1남이며, 일명 하검(夏檢), 자는 하청(夏靑) 또는 윤여(允麗)로 전해집니다.

평산신씨대종중 파종중 게시판에 따르면 신하는 전서(典書)를 거쳐 한성윤에 올랐다가,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이에 반대하여 함경도 함흥으로 적거(謫居)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조선 건국 후에는 숭록대부 병의육덕보조공신에 책록되었다고 하며, 2007년 경기도 파주 고려통일대전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글은 외손녀인 청주 한씨가 신의왕후로 추존된 일을 책록 배경으로 적고 있으나, 연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이 대목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묘소는 함흥군 덕천면 덕음암동에 있다고 하며(봉미형 계좌), 배위는 파평 윤씨입니다. 아들로 가권(군수)·가의(개성부도사)·가례(참판)·가배(문과)를 두었고, 사위로는 청주 한경, 신안 주인, 양주 조말생, 봉산 이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향사일은 음력 9월 19일로 전해집니다.

※ 위 내용은 종중 게시글을 간추린 것으로, 정확한 세계와 사적은 보유하신 족보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밀직공파 (密直公派)

밀직공파는 15세 신아(申雅)를 파조로 합니다. 대종중 게시판에 따르면 신아는 11세 연–12세 중명–13세 집–14세 익지의 1남으로, 자는 담수, 호는 한천자이며 1357년 문과에 급제해 한림을 지냈다고 소개됩니다. 정몽주·이색 등과 교유하며 상례를 바로잡고 주자학을 주장했다고 하고, 이성계 세력에 의해 유배된 뒤 고려가 망하자 황해도 평산 한천에 은거했다고 전해집니다.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두문동서원 등에 배향되었다고 하며, 향사일은 음력 10월 1일로 소개됩니다.

봉상윤공파 (奉常尹公派)

봉상윤공파는 봉상시윤(정3품)을 지낸 15세 신정도(申丁道, ?~1446)를 파조로 합니다. 11세 연–12세 중명–13세 집–14세 이의 1남이며, 자는 유지로 소개됩니다. 1404년 감무, 1440년 서운부정을 거쳐 봉상시윤을 지냈고, 《태종실록》에 신정도의 진언이 실려 있다고 종중 게시글이 인용합니다. 묘는 평산 고지릉동으로 전해집니다.

장령공파 (掌令公派)

장령공파는 15세 신정리(申丁理)를 파조로 합니다. 14세 이의 2남(봉상윤공 신정도의 아우)으로 소개되며, 1421년 장령, 1424년 호군, 1425년 우군경력을 지냈다고 합니다. 묘는 전북 고창 선운사 인근으로 전해지고 향사일은 음력 10월 1일입니다.

현령공파 (縣令公派)

현령공파는 15세 신감(申鑑)을 파조로 합니다. 14세 안(晏)의 1남으로 문희공 신개의 형이며, 고려 집현전랑을 지내고 조선 개국 후 서흥현령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두문동에 들어갔다가 화재 때 순절했다고 종중 게시글은 전합니다. 묘는 황해도 평산, 단(壇)은 경기도 양주에 있다고 하며 향사일은 음력 10월 2일입니다.

대제학공파 (大提學公派)

대제학공파는 15세 신연(申演)을 파조로 합니다. 14세 혼(琿)의 2남으로 사간공 신호의 아우이며, 고려 말 밀직사사·우문관 대제학을 지내다 고려가 망하자 부친 혼, 아우 기와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 순절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들로 인용·인혁·인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수감공파 (溫水監公派)

온수감공파는 15세 신기(申淇, 1365~1393)를 파조로 합니다. 14세 혼의 3남으로, 공양왕 때 온수감을 지냈다고 합니다. 종중 게시글에 따르면 부친 혼이 두문동에 들어갈 뜻을 밝히자 맏형 호만 조선에서 가문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3부자가 두문동에 들어갔다가 순절했다고 전해집니다. 16세 용이 의관으로 초혼하여 충남 서천에 장사했으며, 서천 율리사와 두문동서원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향사일은 음력 3월 5일, 후손은 충남 서천군 비인면 일대에 많은 것으로 소개됩니다.

전서공파 (典書公派)

전서공파는 15세 신호(申灝)를 파조로 합니다(사간공 신호(申浩)와는 다른 인물). 14세 우(瑀)의 1남으로, 관직이 전서에 이르렀으나 1392년 조선 건국 후 벼슬을 버리고 평산에 은거했다고 전해지며 두문동서원·동양서원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단은 경기도 가평에 있고 향사일은 양력 4월 마지막 일요일로 소개됩니다.

이상공파 (貳相公派)

이상공파는 15세 신인기(申仁錡, 호 두은)를 파조로 합니다. 14세 순(珣)의 1남으로 고려 첨의부찬성사·한림학사를 지냈고 조선 개국 후 전남 흥양(고흥) 두원곶에 물러나 벼슬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충남 예산군 봉산면 대지리 일대가 집성촌이며, 이는 17세 신숙서가 단종 복위 모의와 관련해 면천으로 귀양 간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소개됩니다. 향사일은 음력 10월 10일입니다.

진사공파 (進士公派)

진사공파는 15세 신유(申維)를 파조로 합니다. 12세 자명–13세 중전–14세 윤공의 2남으로, 이성계와 같은 해 진사에 급제했으나 조선 건국 후 예천 신당동에 은거하며 일곱 번 부름을 받고도 나아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묘는 경북 예천군 호명면, 향사일은 음력 10월 3일로 소개됩니다.

감찰공파 (監察公派)

감찰공파는 15세 신강(申綱)을 파조로 합니다. 14세 윤공의 3남으로 진사공파 파조 유의 아우이며, 고려 사헌부 감찰어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묘소는 실전(失傳)되었다고 소개됩니다.

판윤공파 (判尹公派)

판윤공파는 한성판윤을 지낸 15세 신시현(申時見)을 파조로 합니다. 14세 윤안의 1남이며, 자세한 사적은 족보에 빠져 있어 알기 어렵다고 종중 게시글은 밝히고 있습니다. 묘소는 실전되었고 단(壇)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동에 있다고 하며 향사일은 음력 10월 9일입니다.

참판공파 (參判公派)

참판공파는 호조참판을 지낸 15세 신도지(申道之)를 파조로 합니다. 14세 국의 1남이며, 묘소와 사적이 실전되어 후손들이 근거지를 찾고 있다고 종중 게시글은 소개합니다.

군수공파 (郡守公派)

군수공파는 15세 신우방(申佑邦)을 파조로 합니다. 11세 연–12세 헌주–13세 욱–14세 현의 1남이며, 묘소는 실전되었습니다. 1980년 종회가 창립되고 1989년 파종중으로 등록되었으며 후손은 서울·경기·충남·광주·전남 등에 약 800명이 분포한다고 소개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신숭겸, 신개, 신립, 신경진, 신흠, 신사임당, 신헌, 신익희, 신돌석, 신팔균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평산 신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평산 신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신돌석 (1878~1908)독립유공자 · 의병 · 대통령장(1962)신팔균 (1882~1924)독립유공자 · 만주방면 · 독립장(1963)

평산 신씨와 시조 신숭겸

평산 신씨(平山 申氏)는 황해도 평산을 본관으로 합니다. 평산은 고구려 때 대곡군 등으로 불리다가 고려 초 평주가 되었고, 조선 태종 13년(1413) 평산으로 정해진 지명으로 소개됩니다. 시조 신숭겸(申崇謙, ?~927)은 초명이 능산(能山)이며 전남 곡성 출신으로 전해집니다. 태봉의 기병 장수로 있다가 918년 홍유·배현경·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앞장선 개국공신입니다.

본관의 유래

전하는 이야기로는, 왕건이 평주에서 사냥하던 중 세 마리 기러기 가운데 셋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혀 보인 신숭겸에게 땅 300결을 내리고 평산을 본관으로 삼게 했다고 합니다. 927년 공산(팔공산) 전투에서는 왕건과 용모가 닮은 신숭겸이 왕건을 피신시키고 대신 어가를 타고 싸우다 전사했으며, 태조는 시신을 춘천에 예장하고 장절(壯節)의 시호를 내렸다고 합니다. 1120년 예종이 서경 팔관회에서 〈도이장가〉를 지어 신숭겸과 김락의 공을 기렸다고 전해집니다.

가문의 성장과 대표 인물

11세 신연의 세 아들 중명·자명·헌주 대에 가세가 크게 일어난 것으로 소개됩니다. 중명의 아들 대에는 집·군평·현이 이름을 떨쳤고, 그 후손에서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내며 《고려사》 편찬에 참여한 신개(문희공), 사간공 신호, 정언공 신효 등이 나왔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의 명장 신립과 인조반정 공신으로 영의정에 오른 그의 아들 신경진, 한문학의 대가 신흠, 화가이자 문인인 신사임당 등이 배출되었습니다. 근대에는 평민 의병장 신돌석, 독립운동가 신팔균, 정치가 신익희 등이 이 가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종중 소개에서는 조선 후기에 상신 8명, 대제학 5명, 판서 20명, 문과 급제자 302명을 냈다고 밝힙니다(자료마다 숫자가 조금씩 다릅니다).

분파

평산 신씨는 시조의 15세손 대에서 19개 파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문희공파(파조 신개)와 사간공파(신호)가 각각 약 30%, 제정공파(신효창)가 약 25%를 차지한다고 소개되며, 이 밖에 정언공파·밀직공파·봉상윤공파·장령공파·현령공파·한성윤공파·온수감공파·대제학공파·전서공파·이상공파·판사공파·진사공파·감찰공파·판윤공파·참판공파·군수공파가 있습니다. 어느 파에 속하는지는 보유하신 족보에서 확인하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주요 유적

시조 묘역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으며, 봉분이 셋이라고 알려져 있고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향사한다고 합니다. 대구 동구 지묘동의 표충사(대구 기념물 제1호)와 평광동의 영각유허비·모영재(대구 문화재자료 제46호)는 시조를 기리는 곳이며, 전남 곡성에는 출생지로 전해지는 구룡리의 용산단과 시조를 모신 덕양서원이 전라남도 기념물 제56호로 함께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 경백사·율리사 등 사당이 전해집니다.

부가 정보: 곡성 덕양서원은 1589년 후손들이 창건했으나 임진·정유재란으로 학사와 재사가 불탔고 사우와 위패만 남았다고 전해지며,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4년 복설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평산 신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평산)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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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산 신씨 시조 계보도

평산 신씨 시조 계보도장절공 신숭겸 → 19개 파조 → 신개 → 신립 · 신흠 · 신사임당
공개된 사료로 확인되는 평산 신씨 윗대 계보를 실제 족보트리로 그렸습니다. 인물을 누르면 그 분부터 위쪽 계보를 내 족보 맨 위로 가져올 수 있어요(요금제 인물 수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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