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본명 홍면희, 호는 만호
| 생몰 | 1877 ~ 1946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풍산 홍씨 |
홍진(洪震, 1877~1946)은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풍산입니다. 본명은 홍면희(洪冕憙), 아명은 봉근·우봉, 호는 만호(晩湖)입니다. 풍산홍씨대종회와 나무위키 계통 자료는 그를 모당공계 지계공파로 소개합니다. 법관양성소를 마치고 평리원 판사, 충주재판소 검사를 지냈는데, 1908년 의병 사건의 논고를 거부하고 검사직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병합 뒤에는 변호사로서 평양 등지에서 애국지사를 변론하는 법정 투쟁을 이어 갔습니다.
1919년 3·1 운동 때 연락 책임을 맡았고, 한성정부 조직에 참여한 뒤 같은 해 4월 이규갑과 함께 한성정부의 각원 명단과 문건을 가지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습니다. 임시의정원 의원, 법제위원장 등을 지냈고 1921년 5월 임시의정원 제3대 의장에 선출되었습니다. 1926년 7월 국무령(국무총리급)으로 선출되어 정부를 구성했으나 같은 해 12월 유일당 운동에 힘쓰려 사직했습니다. 이후 한국독립당(1930)·신한독립당·민족혁명당 창당에 관여했고, 1939년과 1942년에 임시의정원 의장을 다시 맡았습니다. 임시정부에서 입법부 의장과 행정부 수반을 모두 지낸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1945년 신한민주당을 창당했고 1946년 9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처음 인천에 모셔졌던 묘는 1984년 12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된 뒤 1994년 국립묘지 임시정부요인 묘역(임정수반 묘소)으로 옮겨졌습니다. 풍산 홍씨 안에서는 홍명희·홍범식 같은 추만공파 인물과 달리 지계공파의 대표 독립운동가로 꼽힙니다. 출생지는 서울로 쓴 자료와 충북 영동으로 쓴 자료가 갈립니다. 대종회는 그를 '중경 임시정부에서 국무령과 의정원 의장으로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인물로 소개합니다.
1919년 한성정부 문건을 가지고 상하이로 망명했고 1921년 임시의정원 의장에 선출되었습니다.
1926년 7월 국무령에 선출되어 정부를 꾸렸고, 12월 유일당 운동을 위해 사직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고 1994년 국립묘지 임정요인 묘역으로 천장되었습니다.
서울현충원(동작동 국립묘지) 임시정부요인 묘역에 모셔져 있습니다.
임시정부 국무령과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홍면희입니다.
풍산 홍씨 지계공파로 소개됩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