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꺽정』의 작가, 신간회에서 활동한 문인·독립운동가, 월북 후 북한 부수상

| 생몰 | 1888 ~ 1968 |
| 시대 | 일제강점기·현대 |
| 본관 | 풍산 홍씨 |
홍명희(洪命憙, 1888~1968)는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본관은 풍산, 호는 벽초(碧初)입니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의 홍범식 고가에서 태어났고, 위키백과는 풍산 홍씨 가운데 정명공주와 홍주원의 차남 홍만형이 그의 10대조라고 적습니다. 증조부 홍우길은 이조판서, 할아버지 홍승목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아버지 홍범식은 금산군수로 한일병합에 항거해 자결했습니다. 정약용의 처가가 그의 집안의 방계 혈족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어릴 때 생모를 잃었고 1900년 민영만의 딸 여흥 민씨와 혼인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일제에 협력하지 않았고, 1919년 3·1운동 때는 괴산에서 충청북도 최초로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후 상하이로 갔고 여러 번 옥고를 치르면서도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대일보 사장, 오산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아들 홍기문과 함께 신간회 결성에 참여했습니다. 1928년 11월 21일부터 조선일보에 소설 『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투옥과 사정으로 네 차례 연재가 중단되었고 1940년 조선일보가 폐간된 뒤에는 『조광』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최고의 우리말 사전'이라 불리며 한국 근대 역사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광수·최남선과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습니다.
해방 뒤 그는 중도적 입장에서 활동하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위해 김구·김규식 등과 같은 시기에 방북했고, 돌아오지 않은 채 북에 남았습니다. 1948년 9월 북한 부수상에 선임되었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1968년 3월 5일 세상을 떠나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습니다. 월북 이후의 행적은 남북 양쪽에서 평가가 크게 갈리는 대목입니다. 그의 생가는 충북 괴산군이 보존하고 있으며, 1998년 괴산에 문학비가 세워졌으나 월북 사실을 문제 삼은 일부 단체의 반발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글은 위키백과에 실린 사실 위주로 서술했고 정치적 평가는 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서훈 여부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홍기문은 북한에서 학자로 활동했습니다. 대종회는 그를 '조선 3천재의 하나로 꼽히던 임꺽정전의 저자'로 소개합니다.
1928년 11월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했고 네 차례 중단되었습니다. 우리말 어휘의 보고로 평가됩니다.
할아버지 홍승목은 친일 인사로 분류되었고 아버지 홍범식은 병합에 항거해 순국했습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 때 방북해 돌아오지 않았고 북한 부수상을 지냈으며 1968년 평양에서 죽었습니다.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습니다. 생가(괴산 홍범식 고가)는 충북 괴산군이 보존하고 있습니다.
장남 홍기문(1903~1992, 북한 학자), 손자 홍석형 등.
『임꺽정』을 쓴 풍산 홍씨 소설가로 신간회에서 활동했고 1948년 월북했습니다.
한일병합에 항거해 자결한 금산군수 홍범식입니다.
벽초(碧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