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말 형조·병조참판을 지낸 관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자
| 생몰 | 1847 ~ 1925 |
| 시대 | 대한제국·일제강점기 |
| 본관 | 풍산 홍씨 |
홍승목(洪承穆, 1847~1925)은 조선 말기의 관료로 본관은 풍산, 자는 경희(敬熙), 호는 연운(硯耘)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한성부 출신으로 1875년 과거에 급제해 승정원에서 벼슬을 시작했고, 홍문관·사헌부 등을 거쳐 1879년 형조·병조참의, 1881년 사간원 대사간, 1883년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었습니다. 1890년 형조참판과 병조참판을 지냈고 1900년 궁내부 특진관에 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홍우길이고, 아들이 한일병합에 항거해 자결한 홍범식, 손자가 소설가 홍명희입니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 친일 단체에 가담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동학회 부회장을 맡았다가 회장 신기선이 죽자 회장직을 물려받았고, 후신인 공자교회의 부회장도 지냈습니다. 1908년에는 민원식이 주도한 제국실업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이 단체는 일본인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친일 성향의 보부상 등을 모아 합방을 앞당기는 활동을 벌였다고 평가됩니다. 같은 무렵 관진방회에 가담했고, 1909년 이완용이 일진회에 대응해 만든 국민연설회의 기초위원도 지냈습니다. 병합 조약 체결 직전부터 협조한 관료들보다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적극적으로 친일로 전향했다는 평가입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뒤에는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중추원의 찬의가 되어 1921년 관제 개편 때까지 재직했고, 1912년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의 친일파 708인 명단,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일제강점기 초기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모두 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같은 가문의 아들 홍범식이 순국한 일과 크게 대비되어, 이 풍산 홍씨 집안은 근대사에서 순국과 친일이 갈린 사례로 자주 거론됩니다. 이 초안은 위키백과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이유서 요약에 근거했으며 개별 행적의 세부는 원문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1875년 급제해 대사간·대사성, 형조·병조참판을 지냈고 1900년 궁내부 특진관에 올랐습니다.
1907년 이후 대동학회·제국실업회 등에서 활동했고, 병합 뒤 1910~1921년 중추원 찬의를 지냈습니다.
아들 홍범식(순국), 손자 홍명희, 딸 홍정식(독립운동가 조완구의 부인).
대한제국 말 관료로 병합 뒤 중추원 찬의를 지내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된 풍산 홍씨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아들 홍범식은 병합에 항거해 자결했습니다.
홍명희의 할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