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 黃衡

삼포왜란 때 제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무신, 공조판서에 올랐고 시호는 장무(莊武)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5호 황형 묘 (국가유산청 · 공공누리 제1유형 · Wikimedia Commons)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5호 황형 묘 (국가유산청 · 공공누리 제1유형 · Wikimedia Commons) · 공공누리 제1유형 (출처표시) · 국가유산청
생몰1459 ~ 1520
시대조선 전기
본관창원 황씨

생애 약력

황형(黃衡, 1459~1520)은 조선 성종·중종 때의 무신으로 본관은 창원, 자는 언평(彦平)입니다. 고조부는 고려 때 회산군에 봉해진 공희공파 파조 황석기(黃石奇)이고, 증조부는 황창(黃昌), 조부는 대흥현감을 지낸 황선경(黃善慶), 아버지는 선공감정을 지낸 황예헌(黃禮軒)이며 어머니는 의령 남씨 남인보의 딸로 전합니다. 한 자료는 아버지를 병조판서로 적기도 해 관직 기록이 갈립니다.

1480년(성종 11) 무과와 진현시에 급제했고, 1486년 무과 중시에서 장원을 했다고 합니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 때 방어사로 나가 웅천 제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이때 직책을 위키백과는 전라좌도방어사로, 일부 자료는 경상좌도방어사로 적어 서로 다릅니다. 이후 경상도병마절도사에 올랐고, 1512년 함경도 야인의 반란에는 순변사로 나가 진압했으며, 평안도·함경북도 병마절도사와 도총관·지훈련원사를 거쳐 공조판서에 이르렀습니다.

1520년 세상을 떠나자 중종이 시호를 장무(莊武)로 내리고 강화 연미정 일대와 전답, 산지를 사패지로 내려 장례를 치르게 했다고 합니다. 말년을 연미정에서 보냈다고 전하며, 연미정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입니다. 묘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고 2013년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5호(황형 묘)로 지정되었으며, 후손들이 장무사에서 해마다 음력 10월 1일 제례를 올린다고 합니다. 연미정의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민간 설화적 성격이 강해 사실과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삼포왜란은 1510년 4월 부산포·제포·염포에 살던 일본인 거류민이 대마도 세력과 손잡고 일으킨 난으로, 조선 정부는 진압한 뒤 한동안 일본과의 교역을 끊었다가 1512년 임신약조로 교역을 다시 허락했습니다. 황형은 이 난을 진압한 장수로 알려져 있으며, 변방의 무장으로 30여 년을 지냈다고 합니다. 또 일부 자료는 후손을 4만여 명으로 소개하나 정확한 수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삼포왜란과 제포 전투

1510년 삼포왜란은 부산포·제포·염포의 일본 거류민이 일으킨 소요입니다. 황형은 방어사로 제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고 하며, 소임이 전라좌도인지 경상좌도인지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습니다.

변방의 무장

이후 순변사로 함경도 야인의 난을 진압하고 평안도·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지내며 남·서·북 변경을 두루 지켰습니다. 공조판서에 올랐고 후손은 장무공파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강화 연미정과 장무사

중종이 연미정 일대를 사패지로 내렸다고 전하며, 황형 묘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5호입니다. 장무사에서는 음력 10월 1일 제례를 올린다고 합니다.

묘소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묘가 있으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5호 황형 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묘역에는 신도비와 사당 장무사가 있다고 합니다.

후손

아들 황기(黃琦)는 도승지·경기도관찰사를 지냈고, 증손 황신은 호조판서에 올랐습니다. 자손이 강화 일대에 모여 살았다고 전합니다.

황형 자주 묻는 질문

황형은 어떤 사람인가요?

1510년 삼포왜란 때 제포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공조판서에 오른 창원 황씨 공희공파 무신입니다.

황형의 시호는 무엇인가요?

장무(莊武)입니다.

황형 묘는 어디에 있나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으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5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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