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계변무 주청사로 명에 다녀와 광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의성군에 봉해진 이조판서
| 생몰 | 1517 ~ 1591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창원 황씨 |
황림(黃琳, 1517~1591)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원, 자는 여온(汝溫)입니다. 조선 개국공신 황거정의 6대손이며, 증조부 황징(黃澄)은 고원군수, 조부 황준원은 풍저창수, 아버지 황순경은 부사를 지냈고 각각 후에 호조참의·이조판서·호조판서로 추증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판중추부사 조계상의 맏딸로 기록되어 있어, 이름난 관료 집안의 외손이기도 했습니다. 동생 황선의 아들 황극중(黃克中)은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1552년(명종 7)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로 출발해 정언·지평·헌납·수찬·장령·사간·홍문관교리 등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청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1564년 동부승지로 유생 제술 시험을 맡았고, 호조참의와 좌·우승지를 지냈습니다. 1573년 나주목사로 나가 지방 행정을 맡았고, 1575년 여주목사로 있을 때는 고을을 가장 잘 다스렸다 하여 특지로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곧 탄핵을 받아 물러났습니다.
1577년(선조 10)에는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종계변무는 명나라 책에 조선 왕실의 계통이 잘못 적힌 것을 바로잡아 달라는 외교 사업으로, 조선이 오랫동안 매달린 일이었습니다. 이후 공조판서와 호조판서를 거쳐 1590년(선조 23) 광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의성군에 봉해졌으며, 이듬해 이조판서로 재직하던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중공파 중에서 조선 중기 가장 높은 벼슬에 오른 인물의 한 사람입니다.
종계변무는 명나라 『대명회전』 등에 태조 이성계의 계통이 잘못 적힌 것을 바로잡으려 조선이 오랫동안 사신을 보낸 일입니다. 선조 때 개정된 기록을 받아 오면서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알려져 있고, 1590년 이를 기념해 광국공신이 책록되었습니다. 황림은 그 사행에 참여한 인물로 기록되며, 아버지 황순경에서 조부·증조부로 이어지는 관직 추증 기록은 그의 출세가 가문 전체의 영예로 이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155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지평·장령·사간·홍문관교리 등 언관과 학술직을 거쳐 승지에 올랐습니다. 나주목사와 여주목사로 나가 지방 행정에서도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1577년 주청사로 명나라에 가서 조선 왕실의 계통을 바로잡아 달라는 종계변무 외교에 참여했습니다. 이 문제는 선조 대까지 이어졌고 광국공신은 그 해결을 기념해 책록된 공신입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6대조가 황거정이며, 조카 황극중이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조 때 이조판서에 오르고 광국공신 3등으로 의성군에 봉해진 창원 황씨 시중공파 문신입니다.
명나라 책에 잘못 적힌 조선 왕실의 계통을 바로잡도록 요청한 외교 사업입니다.
조선 개국공신 황거정의 6대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