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때 부제학·대사헌을 지내고 계축옥사 뒤 낙향한 학자 관료, 호는 식암, 시호는 정익
| 생몰 | 1544 ~ 1616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창원 황씨 |
황섬(黃暹, 1544~161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원이며 호장공파 계통입니다. 자는 경명(景明), 호는 식암(息庵)이며 돈암(遯庵)이라고도 하고 시호는 정익(貞翼)입니다. 찬성 황사우의 손자이자 동지돈녕부사 황응규의 아들이고, 동생 황시의 기록에 형은 부제학 황섬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 해제는 그를 정탁의 문인으로 소개합니다.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급제했고 정언·병조참지·안동부사 등을 거쳐 1607년 12월 대사헌에 올랐습니다. 위키백과 등은 부제학과 대사헌을 지냈다고 적습니다. 그의 누이는 소북파의 영수로 영의정에 오른 류영경의 부인이어서, 황섬은 류영경의 처남이었습니다. 류영경이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만큼 황섬 역시 소북 계열 인물로 분류됩니다.
1613년 계축옥사 이후 광해군 정권에서 소북계가 밀려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 학문에만 몰두했다고 합니다. 1616년에 세상을 떠났고, 사후 시호 정익을 받았습니다. 그의 시문은 『식암선생문집』으로 정리되어 1769년에 간행되었으며, 한국국학진흥원 해제는 임진왜란 중의 전쟁 체험이 담긴 시가 많다고 평가합니다. 황사우·황시·황유중의 글과 함께 『회산세고』에도 실려 있어 호장공파의 학문 전통을 보여 줍니다.
류영경은 선조 말 영의정으로 영창대군을 지지했다가 1608년 광해군 즉위 직후 탄핵을 받아 유배된 뒤 사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처남인 황섬의 처지도 크게 달라졌으리라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황섬의 아버지 황응규가 임진왜란 때 절충장군에 올랐다는 기록과 함께, 이 집안이 문과 급제 뒤 무관의 직책까지 맡았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류영경의 부인이 황응규의 딸이어서 황섬은 소북파 영수 류영경의 처남이었습니다. 이 인척 관계는 위키백과의 류영경 항목에서도 확인됩니다.
부제학을 지냈다는 기록은 위키백과와 동생 황시의 기록에 보이지만, 한국국학진흥원 해제에서는 같은 직책이 확인되지 않아 자료마다 관력 서술이 조금 다릅니다.
『식암선생문집』은 1769년 간행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쓴 시가 많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황사우, 아버지는 황응규이며, 동생 황시도 문과에 급제해 승지를 지냈습니다.
선조 때 대사헌을 지낸 창원 황씨 호장공파 문신으로 호는 식암, 시호는 정익입니다.
류영경의 부인이 황섬의 누이로, 황섬은 류영경의 처남입니다.
1769년 간행된 『식암선생문집』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