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때 호조·예조·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에 오른 호장공파의 문신
| 생몰 | 1486 ~ 1536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창원 황씨 |
황사우(黃士祐, 1486~1536)는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원이며 호장공파(戶長公派) 계통에서 가장 높이 오른 인물로 꼽힙니다. 자는 국보(國寶)로 전합니다. 호장공파는 고려 때 창원의 호장이던 황양충을 파조로 하는 계통으로, 황사우는 그 후손입니다. 위키백과는 별시문과 갑과로 급제했다고 적는 반면 한국국학진흥원의 『회산세고』 해제는 1507년(중종 2) 진사가 되고 1514년(중종 9) 문과에 급제했다고 하여 기록이 서로 다릅니다.
해제에 따르면 1520년 지평이 된 뒤 문학·헌납·보덕·응교 등 홍문관과 간관의 요직을 거쳤고, 1529년 대사간이 되었습니다. 1534년 형조참판을 지냈으며 이어 호조판서로 올랐고, 이듬해에는 예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잇달아 지낸 뒤 우찬성(右贊成)에 이르렀습니다. 153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판서 세 자리를 거의 2년 안에 거친 셈입니다. 중종 후반 기묘사화 이후의 정치 속에서 활동한 인물이지만, 구체적인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는 이번에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가문 면에서 황사우는 호장공파가 조선 중기에 이름을 얻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아들 황응규(黃應奎)는 주세붕·이황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절충장군을 거쳐 동지돈녕부사에 올랐고, 손자 황섬(黃暹)은 대사헌, 황시(黃是)는 문과에 급제해 승지까지 지냈으며, 이들의 시문은 『회산세고』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사위·외손 관계는 확인하지 못했고, 호(號)도 자료에서 판독되지 않았습니다.
호장공파는 고려 때 창원의 호장, 즉 지방 향리 우두머리에서 출발해 조선에서 판서와 정승급 대신(우찬성)까지 배출한 계통입니다. 황사우의 사례는 지방 토착 가문이 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에 오른 과정을 잘 보여 줍니다. 다만 황사우의 자세한 행적과 문집 내용은 이번에 확인한 자료가 제한적이므로, 『회산세고』와 『중종실록』을 직접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위키백과는 별시문과 갑과 급제로, 『회산세고』 해제는 1507년 진사·1514년 문과 급제로 적습니다. 두 기록은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으나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529년 대사간, 1534년 형조참판을 거쳐 호조판서에 오른 뒤 예조·이조판서와 우찬성을 지냈습니다. 짧은 기간에 육조 판서를 잇달아 지낸 점이 눈에 띕니다.
『회산세고』는 황사우·황섬·황시·황유중 등 창원 황씨 후손들의 시문을 모은 책입니다. 아들 황응규와 손자 황섬의 이야기는 가문의 학문적 전통을 보여 줍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황응규, 손자 황섬·황시가 있으며, 이들의 시문이 『회산세고』에 실려 있습니다.
중종 때 호조·예조·이조판서를 지내고 우찬성에 오른 창원 황씨 호장공파 문신입니다.
아들은 황응규, 손자는 대사헌을 지낸 황섬과 승지를 지낸 황시입니다.
『회산세고』에 후손들의 시문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