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의 난·정묘호란에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호종, 소현세자를 심양까지 모셨다고 전하는 거창 장씨 무관
| 시대 | 조선 인조 때 |
| 본관 | 거창 장씨 |
장일남(章逸男)은 인조 때의 무관입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무과에 급제한 뒤 이괄의 난(1624)과 정묘호란(1627)에서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1636) 때는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호종하며 적을 막았습니다. 디지털거창문화대전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호종하고 세자를 심양까지 모셨다고 정리합니다.
병자호란에서 인조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하다가 이듬해 1월 항복했고, 이후 소현세자가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가게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장일남이 세자를 심양까지 모셨다는 내용은 거창 장씨 쪽 자료에서 전하는 것이며, 그가 맡은 직책과 심양에 머문 기간, 그리고 생몰 연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임진왜란의 장만리 이후에도 거창 장씨가 병란 때마다 무관으로 이름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는 거창 장씨의 무반 전통을 보여 주는 사례로 소개됩니다.
구체적인 관직, 호종 시기, 생몰 연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거창 장씨 세보』나 『거창군사』로 확인하세요.
묘소 정보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인조의 맏아들로, 병자호란 뒤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