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3년 니탕개의 난에 참전하고 임진왜란 때 선조를 업고 피신시켰다고 전하는 거창 장씨, 호성원종공신
| 시대 | 조선 선조 때 |
| 본관 | 거창 장씨 |
장만리(章萬里)는 조선 선조 때의 무인입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그는 1583년 여진족 니탕개의 변란 때 자원해 참전하여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습니다. 디지털거창문화대전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던 중 왕을 업고 왜군을 피했다고 전하며, 그 공으로 호성공신에 책봉되고 승지에 증직되었고 정려를 받았다고 적습니다. 나무위키는 호성원종공신이라고 구분해 쓰고 '영세불망자' 교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나무위키는 왕이 왜군이 가까이 닥치자 십여 리를 빗길에 업혀 달아났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만, 이 이야기는 문중과 지역 향토 자료에 전하는 내용으로, 『선조실록』 등 당대 기록으로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호성공신은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사람들에게 내린 공신인데, 디지털거창문화대전은 '호성공신', 나무위키는 '호성원종공신'으로 표기해 훈등이 자료마다 다릅니다. 생몰 연대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거창 장씨는 장만리처럼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위해 이름을 남긴 인물을 여럿 냈습니다. 같은 시기 장헌휘와 장헌부의 순절 이야기와 함께 거창 장씨의 대표적인 가문 전승으로 소개됩니다.
'왕을 업었다'는 이야기는 문중 전승이며 당대 실록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훈등(호성공신/호성원종공신)도 자료마다 다릅니다.
묘소와 정려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사람들에게 내린 공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