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원판결사·밀양부사를 지낸 문신, 임진왜란 때 강원도에서 의병을 모음, 호 매창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청주 정씨 |
정사신(鄭士信)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부(子孚), 호는 매창(梅窓) 또는 신곡(神谷)입니다. 의영고직장 정윤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사 정언보, 아버지는 정두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 사직 권식의 딸입니다. 현감 정사성(鄭士誠)의 아우입니다. 생몰년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582년(선조 1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저작·박사·감찰·정언·예안현감·병조정랑·부수찬 겸 경연검토관·춘추관기사관·전적·예조정랑·수찬 등을 지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지평으로 왕을 따라 평양으로 피난하던 중 반송정에서 이탈했다 하여 삭직되었습니다.
그 뒤 강원도 지방에서 의병을 모아 많은 왜적을 무찌른 공으로 1594년 경상도도사, 1595년 선산군수가 되었고 1609년(광해군 1)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했습니다. 이듬해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선계변무의 공으로 광국원종의 훈에 책록되었으며, 장례원판결사와 밀양부사 겸 경상도중도방어사에 이르렀습니다. 예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저서로 『매창집』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초 선조가 평양으로 피난할 때 지평으로 어가를 따랐으나 반송정에서 이탈했다는 이유로 삭직당했습니다. 그는 곧 강원도로 가서 의병을 모아 많은 왜적을 물리쳤고, 이 공으로 1594년 경상도도사에 오르면서 복권되었습니다. 공직에서 쫓겨난 뒤 의병으로 속죄한 사례입니다.
그는 1609년 문과중시에 급제한 뒤 이듬해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는데, 선계변무(璿系辨誣)의 공으로 광국원종의 훈에 책록되었습니다. 선계변무는 명나라 기록에 잘못 적힌 조선 왕실의 계보를 바로잡으려는 외교 사업(종계변무)과 관련된 말로 이해됩니다. 형 정사성이 학자로서 이름을 남겼다면 정사신은 관료로서 임진왜란과 외교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형제입니다. 정사성이 형, 정사신이 아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