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적 격퇴와 동녕부 정벌에 공을 세운 서북면상원수, 시호 충무
| 생몰 | 1313 |
| 시대 | 고려 말 |
| 본관 | 충주 지씨 |
지용수(池龍壽, 1313?~?)는 고려 말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충주, 자는 하성(河聲), 호는 월송(月松), 시호는 충무(忠武)입니다. 충주 지씨 16세손이며 할아버지는 문하시랑 지원부, 아버지는 시중 평장사 지환입니다. 외손자가 훗날 세종 때 집현전 부제학이 된 최만리입니다.
충목왕 때 현릉직으로 보임되었고, 공민왕 때 홍건적이 침입하자 안우를 도와 개경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워 1등공신이 되었습니다. 이후 덕흥군의 군대를 물리친 공으로 공신 칭호를 더 받았으며, 동지밀직사사를 거쳐 첨의평리·지문하성사에 올랐습니다.
1366년에는 교동을 침입한 왜구를 격파했고, 1369년 서북면 상원수 겸 평양윤이 되었습니다. 1370년 원나라 기새인티무르가 동녕부를 거점으로 변경을 침입하자 상원수로서 이성계 등과 압록강을 건너 크게 승리했다고 전합니다.
공민왕 때 홍건적이 개경을 점령하자 안우와 함께 수복에 나선 지용수는 이 공으로 규의선력공신 1등에 오르고 판전객시사가 되었습니다. 이어 덕흥군이 원나라의 지원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이를 물리친 공으로 추성규의선력공신의 호가 더해졌습니다. 이후 동지밀직사사로 승진했습니다.
1370년 8월 기새인티무르가 동녕부를 거점으로 변경을 침입하자 공민왕은 상원수 지용수, 부원수 양백안, 안주상만호 임견미, 이성계 등을 보내 치게 했습니다. 지용수는 압록강에 나무다리를 놓아 3일간 병력을 건너게 했다고 하며, 가뭄 끝의 폭염과 뇌우 속에서 병마사 이구가 상서로운 징조라고 말해 사기를 북돋웠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이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돌아오자 왕이 하늘이 낸 장수라 칭찬했고 문하시중 찬성사 겸 평장사를 지내 충무공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증조부는 지흡, 조부는 문하시랑 지원부, 아버지는 시중 평장사 지환이며, 어머니는 창녕 조씨입니다. 누이는 창녕 성씨 성공필에게 시집갔고 그 후손이 사육신 성삼문의 6대조와 이어진다고 합니다. 딸이 최하와 혼인해 낳은 아들이 최만리이며, 그는 세종 때 한글 창제에 반대 상소를 올린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지찬, 손자 지원종이 있고, 딸의 사위는 최하이며 외손자가 최만리입니다.
홍건적 격퇴와 1370년 동녕부 정벌에 공을 세운 고려 말 무장입니다.
세종 때 집현전 부제학을 지낸 최만리입니다.
충무(忠武)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