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규 林學規

서천 신장리 장터 3·1 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호는 창봉·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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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897 ~ 1974
시대일제강점기·현대
본관평택 임씨

생애 약력

임학규(1897~1974)는 충청남도 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 본관은 평택이며 호는 창봉·산남입니다. 1919년 4월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에서 송기면의 지휘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에 개신교 신자 동료들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튿날인 4월 29일 신장리 장날을 이용해 태극기 200여 장을 장꾼들에게 나눠 주며 참여를 권했고, 2천여 군중 앞에서 만세를 외치며 장터 행진을 벌였습니다. 일본 경찰이 송기면 등을 주재소에 끌고 가자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몰려가 석방을 요구하다가 체포되었고, 1919년 6월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1920년 만기 출감했습니다.

1923년 서울로 올라와 신문 배달·보급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고, 광복 뒤인 1949년 한국독립당 상임고문으로 입당했습니다. 사후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그의 셋째 딸은 김구의 아들 김신과 결혼했다고 전해집니다.

서천 신장리 만세운동

1919년 4월 서천에서는 음력 3월 초하루 장날을 기해 신장리 장터에 사람이 모였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중심이 된 이 시위는 장꾼 수천 명이 참여한 큰 규모였고, 체포된 사람을 되찾으려는 군중의 항의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광복 이후

1949년 한국독립당 상임고문이 되었고, 1957년 직을 사퇴했습니다. 1964년에는 민주공화당 전임고문에 위촉되었고 1973년 이 직에서 물러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치적 평가는 이 초안에서 다루지 않고 이력만 소개합니다.

서훈

공훈록에는 대통령 표창(1983)과 건국훈장 애족장(1990)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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